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대개의 로드무비는 여행을 하고 있는 착각이 들어서 관객으로서의 호사를 실감하게 됩니다. 마음여행이란 진부한 메타포를 더하지 않아도 로드무비 자체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갖다 주죠. 기차도 비행기도 탈 수 없을 때 극장에 앉아서 어디론가 떠나게 해 준 감독 중. 짐 자무시가 한 말은 찐 감흥. " 음악이 나를 장소로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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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조규만-다 줄 거야
음악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고 우리를 타임 슬립 시키고 그 순간이 소금기둥처럼 굳게 하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뮤지션 조규찬은 아바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날 엄마 형(규만)과 함께 팥빙수를 먹으며 귓전을 울리게 하던 여름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이해해요 이해해요.
지금도 그렇지만 난 언제나 추억이나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허망한 멘트를 증오합니다. 전생도 내세도 믿지 않으므로, 행여 믿게 된다 해도 이승의 삶을 번복시키기 위해 전혀 다른 캐릭터로 태어나기란 만무하니까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
다만 청년 시절 내가 했던 생각들을 곱씹어 보게 됐습니다. 어느 우울한 날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나라의 내가 좋아하는 작가 <페터 빅셀>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의 표지를 보고 환호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원제 "오늘 존스는 오지 않는다 Heute Kommt Johnson Nicht Kolumnen"를 누가 이렇게 역설로 영역했나 싶지만, 원문이든 번역이든 심장의 등짝을 쳐대는 후련함은 있었죠.
알프스를 매일 바라보며 사는 빅셀 아저씨도 꼰대가 되고 은빛으로 뒤덮이는 백발을 예측하며 시간이 무섭고 추억이 지루했을 것이나,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이 딱히 무모한 게 아니라고 말해줬습니다. 첫 문장을 읽고 생각했던 건 '이 책은 아주 나중에야 납득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죠.
그러다 리처드 커티스의 영화들을 보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우린 마음만 먹으면 타임슬립도 타임루프도 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잠깐이지만 소름 끼치게 그립고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람을 이승에서 만날 수 있다고요.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던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 마지막 장면은 그 바다 그 바다의 빛깔만큼이나 아파요.
영국남자가 이토록 동양적이고 감성적이고 따뜻할 수 있나,... 를 (외람되지만) 상상하다, 그가 남긴 인터뷰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당신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어찌도 그리 아름다운 로맨스를 부여하느냐"라고 물었던가, 그는 "젊어서 얻은 실연이 너무 커서 이겨내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덕분에 로맨스 감정을 오래오래 유지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당신에게도 시간여행이 필요하냐 시간여행을 꿈꾸냐고 물었을 때 그가 말한 어바웃 타임은 백만 년 동안 눈물이 날 만큼 고왔습니다.
“근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의 크리스마스로 돌아가 모든 걸 사진으로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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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러브 액츄얼리>와 <어바웃 타임>이 겹쳐지던 그 느낌이 나는 아주 오래갈 것 같습니다. 지금 내 나이와 시간과 시대를 잊을 만큼.
단언컨대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정한 적이 없고, 그 죄로 참 무분별한 감정의 소유자로 늙었지만, 젊은 날에 연연하지 않고 노년에 공포를 갖지 않고 농사짓는 소처럼 천천히 걸어가고픈 마음.
어제는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를 모시고 그 아버지가 젖을 떼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엄마를 뵈러 다녀왔습니다. 봉우리 끝에 누워계신 나의 할머니에게 봄꽃을 한 다발 얹어놓을 때 아버지가 꺼내 읽은 편지.
아빠가 아빠의 엄마에게 읽어주는 편지에 반복해서 나오던 나와 내 동생과 엄마의 이름.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호명 앞에서도 담백한 표정관리가 안된다는 것. 어른인 척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그런 감정적인 사람이 어른이라는 것.
아빠는 어제, 밤새 뒤척이는 것 같았는데 "꿈에 할머니를 만났어요"라고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당신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던 아기였으니까...
나의 아빠에게 시간 여행을 보내주고픈, 단 그 여행을 마치고 꼭 나와 내 동생과 엄마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