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안녕
아시다시피 유엔이 1979년을 세계 어린이의 해로 지정한 건 야뉘시 코르착((Janusz Korczak: 1878(_79)-1942)의 탄생 1세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게토의 아이들을 품고 아이들이 떠나는 천국의 계단을 함께 오른 스승의 인품에 대한 경의와 축원이었죠.
signal ↗↘
M: Beth Nielsen Chapman- Say Goodnight not goodbye
인류가 1942년 8월 바르샤바 게토에서 끌려 나온 200여 명의 어린이와 선생님 야뉘시 코르착을 기리는 건 계절을 품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죠. 일종의 체득일 겁니다.
무더운 날 나치가 수용소의 어린이들을 몰살하려 할 때 선생은 말했습니다 "가장 단정한 옷을 차려입으렴"
그 자신도 말끔하게 차려입은 뒤, 아이들의 앞에 서서 가스실 행 기차로 향했습니다. 나치가 대열에서 빠져 생존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말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갈 것'이라고 했구요.
1997년 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이란 영화를 세상에 내놨을 때, 세계는 대부분 야누스 코르착과 그의 가족인 어린이들을 떠올렸을 겁니다. (나조차도...)
아빠 귀도 (로베르토 베니니)가 다섯 살 아들 조슈아 (조르지오 깐따리니)의 마지막 시선 앞에서 한껏 웃으며 장난감 병장처럼 걸어갈 때, 수용소의 모든 유대인들이 조슈아를 위해 성스런 거짓말과 연극에 동참할 때, 코르착의 아이들처럼 아빠와 아빠의 친구들만 믿고 가스실의 공포를 (잠시) 잊었던 조슈아처럼 세상은 지금도 아이들을 앞에 놓고 복수혈전이라는 것을
Sweet Sorrow같이 논리 모순인 제목 <인생은 아름다워>는 혁명가 레프 트로츠키의 유연장에서 유래됐다고 전합니다.
“의식을 깬 이래 43년의 생애를 나는 혁명가로 살아왔다. 그중 42년 동안은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 투쟁했다. 다시 산다면 여러 가지 실수를 안 하려 애쓰겠지만,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롤레타리아요, 마르크스주의자이며, 변증법적 유물론자다. 다시 산대도 나는 화해할 수 없는 무신론자로 죽을 것"이라고 했던 투사.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트로츠키가 떠난 것도 40년 8월이었습니다. 여름은 참혹하고 망명지에서 남긴 그의 저서 <My life>처럼 외곬의 계절이지만 러시아의 전쟁놀이 중에도 생각나는 아름다운 삶.
세상이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우리에겐 아픈 손가락이 존재할 것이고 코르착의 아이들과 트로츠키의 동지들도 여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잊은 척하고 살아갈 뿐...
누군가의 아픈 손가락이 되기 싫었고 나 자신이 생인손 같은 손가락을 앓기도 싫지만, 행여 그런 삶이 주어진다면 나와 그대와 우린 용기로 무장해 공포와 분노를 잊을 수 있을까. 그 힘으로 내 가족을 품어줄 수 있을까, 목숨을 내놓으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지금같으면 "그렇고 말고요"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런 순간에 내 몸이 나서게 될지 의문입니다. 많이 아프고 그래서 종종 걷지 못하고 누워야만 하는 아빠를 종일 지켜보면서 저 이탈리아 영화를 복기했죠.
우린 대부분 가족의 귀함을 확인하는 순간마다 "내가 먼저 떠나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그럼 부족하나마 이 못난 캐어 서비스(!)를 누가 해드릴까. 난 코끼리 부족도 아닌데 말이죠.
코끼리들은 엄청난 가족애로 유명합니다. 만약 어느 누군가의 어미 코끼리가 떠나거나 아기 코끼리가 서너 살을 넘기면 다른 코끼리들이 품어서 키워줍니다. 제 새끼가 아니고 제 부족이 아니어도 안아주는 정글입니다. 정글의 법칙은 때로 인간의 법칙보다 성스럽다니까요. 코르착 할아버지 잘 계시죠, 그곳에서?!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