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서야
불모의 사막 가운데,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마차엔 두 사람밖에 탈 수 없고 현재 인원-> 1 나와 2 노인과 3 애인, 그리고 4 은혜 입은 사람...입니다
누구를 태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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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동물원-사막을 건너는 법 (1995)
정답이 아니라 명답을 얻고자 하는 질문이죠. 머릿수는 넷인데 둘 만 구출할 수 있는 사막. 그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란?? (우리들 버전으로) 은혜 입은 사람과 노인을 태워 보낸 후, 나는 애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것. 초인적인 감정으로 초인의 일을 해내는 것이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 아닐까.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세상(사막)이지 않을는지요.
오노레 발자크가 <사막에서의 열정>에서 그랬나요, "사막은 인간이 없는 신이 살던 곳"이라고.
여행자들의 대부분이 많은 여행지를 뒤로 하고 그에 선택하는 곳, 사막 여행입니다. 오랜 경륜과 감정의 조절을 자신하고 선택했겠지만, 아무리 굳건한 마음을 다지고 출발해도 사막은 춥고 열광적이며 외롭고 광활합니다. 기쁨슬픔병인 양극성 장애兩極性障碍처럼 시시각각 감정의 고저를 겪죠. 하지만 그것이 또 사막 여행의 마력이고 매력인 법.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선 낙타의 속도에 맞춰 차량 타이어의 바람을 뺀다고 하죠. 오래전 신들만이 사막에 살 때도 신들조차 사막은 천천히 걸었을 거예요. 축지법을 쓴다 한들 마법을 피울 수 있다 한들, 사막의 한 올 건드리지 않고 온전히 고통과 더위와 외로움을 견뎠겠죠. 훗날 만들어 낸 인류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들도 인간처럼 외로운 여행을 해봤을 겁니다.
방랑자들에게 꿈의 리스트이기도 한 <타클라마칸>은 그들 위구르언어로 "죽음의 땅"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말하죠. 분명 오아시스가 있고 사막의 둘레길에 마을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어쩌면 우린 사람답지 않고 사람 같지 않아도 살아날 수 있는 여행이고 싶어, 사막을 향하는지도 모릅니다. 카프카의 소설 속 대화처럼
"그곳에 가면 잠자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단다 왜 안자죠? 피곤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미쳤으니까
미치면 피곤하지 않나요?"
이런 선문답으로 열흘 밤낮이 흘러도 타클라마칸이라 여기지 않고 살아 나올 수 있는 일. 여정에 미치는 건 열정에 곯아떨어진 것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일. 돌아보면 내게도 그런 광적인 여행의 날들이 지독하게 있었음을 사막을 건너는 법에 통달했던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