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쓸쓸한 건데 우린
"빈둥거리는 것은 작가의 삶에서 가장 생산적인 부분"이라고 읍소한 건 미국작가 <제임스 노먼 홀>입니다
1920년대 이 미국작가는 타히티 섬까지 건너가 동쪽 해변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아내와 해로하며 그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아루 마을을 떠나지 않았죠. 지금은 박물관이 된 그의 집은 직접 짓고 가꾸어 평생을 산 작업실이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간결해요, "조용하고 수수한 바닷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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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인양 빈둥거리고 아치장거리며 걷는 일을 예술가의 기질로 존중해 주는 건 (애석하게도) 예인들 뿐인 것 같습니다. 보통의 이들은 한심하다 하죠.
어느 밤. 어느 SNS에서 노먼 홀과 같은 재치를 읽었습니다, "졸음이 떨어졌다, 빨리 편의점에 가서 사 와야지.."
그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 낯선 이의 예술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냥 눕거나 이부자리를 펴면 될 일을, 굳이 꾸벅거리고 졸면서 어둠을 패대기치겠다는 기저는 분명 멋진 야행성.
영화를 보거나 시집을 파거나 소설을 독파하거나 기타를 튕긴다는 뜻, 아닐까요.
어느 도시 어느 마을이나 이런 캐릭터들은 한 둘 씩 살기 마련이고 그들이 켜놓아 밤새 밝혀있는 창문들을 상상하며 난 이상하게 위로를 받습니다. 아직도 앞으로도 저런 예인들이 지구와 우주를 지켜낼 것이다. 덕분에 우린 지치지 않고 삶의 빛을 수혜 받을 것이다...
그런 창문 아래서 크리스마스 새벽송 부르듯이 읽어주고픈 시...
<리산>의 <너바나>입니다.
언덕을 넘어 외곽으로 가는 마지막 전차의 종소리도 그친 자정이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입술을 가진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손톱을 가진 여자가 모여드는 자정 너머 술집에 불이 켜지지
누군가와 어깨를 겯고 먼 곳에서 먼 곳으로 가고 싶은 한쪽 어깨가 기울어진 남자와 금이 간 청동의 술잔에 제 손금을 비추어 보는 여자가 있는 그곳에는, 유효기간이 지난 달력을 찢어 불이 꺼진 화덕에 불씨를 살리고 밀봉된 병 속의 시간을 헐어 작고 단단한 주전자 가득 끓여내는 뜨겁고 진한 국물이 있지
지금 막 일 인분의 따뜻한 음식을 사기 위해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와 뜨거운 김이 오르는 노점 식당 앞에 서서 청어 향수가 뿌려진 손수건으로 지워지지 않는 이마의 허기를 닦는 여자
멀리 가는 밤새들 울음 우는 긴 모퉁이 지나 자정 너머 술집에는, 낡은 앨범 속 램프에 그을린 가수의 목소리 흥얼흥얼 타오르는 자정 너머의 화덕, 오래도록 식지 않을 한 스푼의 온기가 있지
..
밥그릇 비우긴 쉬워도 마음 비우긴 어렵다는 말, 삼척동자도 이해하지만 시 한 편 완독 하는 게 일간지를 통으로 읽는 것보다 힘들다는 건, 우리들만 끄덕 이는일.
왜냐하면 시는 인생이고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 맥락을 잡고 결을 살피는 게 심각하게 어렵거든요. 그래도 오늘은 숭늉처럼 쉑쉑 삼켜지는 리산..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