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면죄부는 없을 것이고.
열여덟인가 열아홉 무렵부터 시작해서 매일같이 시를 한 편씩 암송했었습니다. 필사하지 않고 휘파람처럼 흥얼거리다 보면 금세 외워줬어요. 첫 번째 타자는 가고파... 그의 역사의식과 삶을 차치하고 그냥... 고향 바다에 대한 웅숭깊은 호소가 좋았습니다. 바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성정이 느껴져 부럽고 부러웠습니다.
Signal(Ni Volas Interparoli )↗↘
언젠가 한 성악가가 후배와 함께 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바닷가 앞에 서서 후배에게 하는 큰 소리라니 "난 바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 겨울 바다에서 밤을 새도 감기에 걸리지 않아!"
허풍기 하나 없는 그의 자랑이 엄청나게 부러웠죠.
난 내 고향 어디를 콕 찍어 그렇게 육화 할 수 있을까. 평야에서 태어난 나는 그럼 바람과 햇살에 온몸이 살아 움틀거리는 지렁이 같아야 했나? 자괴감 들었죠.
살면서 누군가에게 네 자랑을 해보란 말을 듣지 않아, 내심 안도 했는데 혹여 앞으로 듣게 된다면 난 뭘 내세울까.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엽서를 고르고 사진을 구경하면서 그의 엄청난 한 마디가 생각났었습니다. 조르주 퐁피두는 그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호언했습니다 "나는 1만 5 천행의 시를 외운다"
그를 보좌하고 측근에서 함께 성장한 정치인 자크 시라크는 회상했습니다. "퐁피두 그는 비밀스럽고, 교활하며, 약간 교묘한 인상이었다. 하나 그의 지성, 교양, 그리고 능력이 그에게 확실한 권위를 부여하고 존경을 받게 했다. 특히 나는 그의 길들여지지 않은 눈썹, 그의 날카롭고 매우 친절한 시선, 그의 통찰력 있는 미소/ 유머와 장난기로 가득 찬/ 그의 멋진 낮고 따뜻하며 쉰 목소리, 그리고 강력하면서도 우아한 체격을 기억한다.. 내성적이어서 감정적인 돌발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동료들과 가까운 유대감을 형성하지도 않았노라"라고...
타인이 자신 곁에 파고들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노래를 잘 부르거나 연주에 빼어나거나 시를 써요. 혹은 암송해요.
그리고 어느 날 포텐을 날리죠.. 날 봐..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많이 알고 있어!라고.
시인 윤병무의 <죄와 벌>은 이렇게 읊조리기 시작합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모릅니다
그게 네 죄다...
하략>
죄책감으로 사는 것도 익숙해지니 그러려니... 하지만 참 곱고 어여쁜 것들을 심신에 입력하지 못하고 사는 현실을 뉘우치면 감옥에 사는 기분.
우린 자못 더 코쿤으로 더 깊이 있게 이기적인 독자나 영화관이 되어야 할 듯요..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