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작가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은 표지에 작가얼굴을 넣음이 싫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주관적인 관점) 농기구를 부려놓고 이제 막 갈기 시작하는 대지처럼 봄기운 가득한 이문열의 웃음이 멋졌거든요.
하여, 누구한테나 이문열 같은 젊은 날의 초상화가 있을진대
Signal ↗↘
M: 마야-나를 외치다.
작가 이문열은 삶의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는 지금 내 전기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쓰고 있다"라고 되뇌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성예언이나 주문이나 주술이었겠죠. 성공하고 부유한 작가 같았지만, 반 쌍꺼풀의 눈매엔 늘 우수가 가득했던 전업작가.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에 대한 일갈도 작가 못지않게 패기 있고 젊었던 그도 수많은 고비를 넘겼겠죠. 이제는 위인전 한 권이 다 채워졌을까요.
언젠가 나도 우리도 늙은이란 말을 들을 것이고, 그 말이 익숙해지만 고령화 사회에 일원으로 아치장 거릴 것이고, 그것이 무섭다 해서 시간이 더디 가진 않겠지만, 불쑥 그런 날의 대처법이 궁금해지면 오늘 같은 봄빛아래서 키케로를 읽습니다.
그의 <노년에 관하여> 속 여든네 살 정치가 카토가 말합니다 "큰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과 판단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력이 떨어지는 것은 늙어서라기보다 젊은 날의 방탕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라고.
고대 그리스에선 "노인이 없으면 이웃에서 빌려오라"라고 했다죠. 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봄은 싹이 아니라 겨울을 보내주고 지켜주는 작은 나무라고.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