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에 좋은 터가 따로 있나
세 가지 색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 <블루>엔 블루보다 깊은 블루 수영장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매일같이 수영장에 와서 가만히 있기만 하는 줄리 (줄리엣 비노쉬)에게 누군가 묻죠. "왜 수영을 하지 않아?"
그녀가 말합니다 "난 여기 울러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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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봄바람 심하면 남도 사람들은 지겨운 바람을 핑계로 집을 뛰쳐나가요. 남도의 풍광을 보건대 그럴 만도 합니다. 도시에선 아무리 멀리 나가도 봄바람에 갇힐 들판이 없지요.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이유는 신이 인간에게 눈물 터뜨리고 방황하는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요. 멋들어진 핑계 말입니다..
비 2
성윤석
오래 신은 구두가 날로 헐렁해지듯이
불행도 날로 헐렁해진다
빗속에선 울 만하다
그리되려니, 그리된 것뿐
불운 또한 지나면 아무에게도 주기 싫어지니
비와 눈물 속에선
이 아줌마야
어디에서든
불행도 낡아 가죽이 터져버린다는 걸
(하략...)
불운과 불행이 어찌도 이렇게 질기고 단단한가 스스로 맞짱을 뜰라치면 성윤석 시인처럼 비를 여러 번 맞을까 합니다. 아직도 나의 불행이 이렇게 고철덩이 같은 걸 보면 시간은 암만 멀은 것이죠? 헐렁해지는 그날이 오면 파리의 외곽 수영장에 가서 줄리처럼 흥청망청 울어볼까요.
하나 더 가고픈 것은 오래전 연암이 유랑했던 호곡장(好哭場)
정말 "멋진 울음 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볼 만하도다! (...) 천고의 영웅은 잘 울었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네." 라고 호탕할 수 있을지..
아니, 그쯤 되면 우린 아무 데서나 울어도 쑥스럽지 않을 만큼 슬픔과 우울에 익숙해져 있을 겁니다. 그날이 빨리 오는 것도 더디 오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픔이지만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