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이정표로 여행하는 법

by 봄작

고국인 영국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정신분석의 최고 스승으로 꼽는 앤서니 스토 Anthony Storr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혼자 있는 능력은 인간의 매우 중요한 자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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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도 외로움도 쓸쓸함도 사람만이 영유할 수 있는 힘이고 특기라는 데, 한 표.

정글이나 바다가 아무리 자유롭로 활기차 보여도 방안에 박혀서 코쿤으로 즐기는 정신의 방탕만 할까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고, 그리움이 닿지 못하는 시대가 없고, 배고픔이 이르지 못하는 메뉴가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은 양보하기 어려운 자유입니다.

그것이 능력이라고 콕 짚어서 판단해 주니 어렵지 않은 것이죠, 종종 폭발하듯 찾아오는 외로움이.


어제는 아빠의 슬픈 독백 때문에 주체할 수 없이 힘들었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부모님과 떨어져 내내 혼자 있었습니다. 아빠의 아픔과 두려움과 미안함을 헤아리는 대신 나 홀로 시간을 견뎌내는 게 쉬웠고 "나는 고독의 천재인가" 싶을 만큼 자연스러웠죠.

비단 어제오늘만의 역사가 아니라 난 늘 혼자인 것에 최선을 다해 적응해 왔고 여럿인 것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어 했고, 그 사이에서 나만의 사회성을 키워온 게 아닐까. 행여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해도 공감을 나누고 싶지는 않은 (끝까지 혼자이고 싶은) 봄. 봄날.

<존 버거>의 <몇 시인가요?> 한 페이지엔 딱 어제오늘 같은 날의 위로가 담겨 있답니다


=우리는 부모가 잊지 모한 것들이 응결된 침전물이다.

우리는 남은 것이다. 잊는다는 건

남아있는 실체, 이정표로 여행한다는 것.=


쉼표와 마침표 줄 바꿈까지도 매우 신중하게 읽어내야 하는 존버거의 에스쁘리는 오늘도 배신하지 않는다. "우훗!"

동의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가 잊지 않고 싶어 하는 시간의 역사와 그들 역사 속 멈춰진 시간의 시그널이에요. 어쩌면 세상의 모든 부모는 그 잊어지지 않는 것들을 돌보고 성장시키며 그리움과 외로움을 견뎌내는 게 아닐지. 그러다 병이 들고 쇠약해져 더 큰 외로움의 바다를 헤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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