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오슬로로 날아갈 거예요

by 봄작

세상의 모든 밤은 같은 색과 무게와 소리인 적이 없어, 늘 새롭고 무섭고 배고픈 것. 왜 우린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어둠을 앓는 것일까요.

별빛이나 달빛이 형형한 데도, 까만 조명에 굴복해서 자꾸 반성하고 후회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야만 하루를 그럭저럭 마무리하는 것 같아서요. 밤이 인류에 퍼뜨린 고약한 습성 중 하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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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정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작가들은 인공조명 하나 없이 (작은 빛)도 포착이 가능한 저광도 카메라를 갖고 있다죠. 그래야 동물과 식물들이 놀라지 않고 저들을 엿보는 것도 모른 채 생태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의 목적은 그 순수의 일상을 담으려는 것이니까요.

세상의 많은 예인들이 밤을 소재로 한 그림과 영화와 노래를 만들었을 진대. 개중에 겨울 나라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에서 실력이 가늠됩니다.

40년 동안 오슬로-베르겐 구간의 기차를 운행해 온 기관사 오드 호텐 아저씨. 그의 노르웨이 이야기인

<오드 호텐 odd horten.2011>은 은퇴를 앞둔 마지막 여정 앞에서 벌어지는 낯선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적을 못 할 일들의 연속 때문에 오든 아저씨 참 당황하죠.


"마지막 기차를 운행한 후에 오슬로로 날아갈 거예요"라고 한 그의 호언은 희박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마지막 출근을 앞두고 가던 길에 본 케이크

늘 지나치기만 하던 빵집 쇼윈도엔 그날도 한 개의 케이크만 장식되고 있었습니다. 난 왜 그 클래식하고 그저 그런 삼단 케이크가 인상적이었을까요.

추운 나라 여행에 필수인 초콜릿과 우유와 크림빵 같은 것을 챙길 때 호덴 아저씨가 훔쳐보던 노르웨이의 케이크가 생각납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벨벳처럼 녹아버리는 초콜릿. 카카오 버터의 녹는점에 체온과 비슷해서, 손에 쥐기 무섭게 녹아 버리는 초콜릿.

그런 거 주머니 가득 채워서 어려서 탔던 스케이트 챙겨서 역할을 잃어버린 지 한참 된 배낭을 꺼내서 프라하의 이상한 밤, 부다페스트의 이상한 밤, 페테스부르크의 이상한 밤 같은 기차여행을 하고픈...

피부병처럼 간지럽게 번져오는 아지랑이를 피해, 죄인의 달음질 같은 최고 속도로 벗어나고픈 3월. (봄을 누구나 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 겨울 가을이 훨씬, 갑자기 그리운 도시인들도 많으니까요)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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