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토리노 멜랑콜리

by 봄작

토리노에 가고픈 날씨입니다. 지독하게 우울해서 그 어떤 먹구름이나 눈보라에도 본연의 우울을 잃지 않는 도시. 나고 자라 학자가 된 <타날리아 긴츠부르그>의 명언처럼 "우리의 도시는 본상상 멜랑콜리하다"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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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꿈이나 이상이나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오늘 꼭 채워야 하는 끼니처럼 갈급한 것. 돈이 모아지거나 시간이 나거나 건강해지면 가겠다는 식의 예언은 먹히질 않습니다. "떠나자"라는 청유형이 아니라 "가고 있어"라는 ing인 것이죠.

본능적으로 아카데믹한 도시가 더러 있을진대 그런 곳은 아무리 현대화시켜 오락적을 꾸며놔도 잿빛이고 무겁고 진지해요.

여행을 혐오하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처럼 고집이 강해 보이죠. 기차역에 가서 시간을 맞춰 플랫폼과 티켓을 챙겨야 하는 떠남을 극구 반대했던 클림트는 코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세상만사를 다 짚고 온 방랑자처럼 광대한데 말이죠.

하지만 그는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6시에 쇤브룬궁을 출발해 티볼리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오는 길엔 마차를 탔고 내려서는 거창한 정찬을 먹었죠. 그리고 항상 벗들을 대동했습니다.

당대 드문 지식인이었으므로 그의 외투엔 늘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철학 인문 정치 문학...

화구 못지않게 책이 많았던 장서가 클림트는 여행을 증오한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와 만남을 정해놓은 규칙이 싫었을 겁니다. 매일 새벽 시작하는 성스런 도보여행처럼 진정 어린 진심을 사랑했던 것이겠죠.

그의 새벽여행도 왠지 우울했을 것 같아요. 여행은 침침하고 음울할수록 배가 고프고 빠져드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해서 멜랑콜리한 도시가 오래 기억되는 게 아닐지. 슬픈 추억이 주홍글씨처럼 생각을 장수시키는 것처럼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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