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블링한 남루
노래처럼 가끔씩 부르는 김영승 시인의 제목이 오늘 유난히 다디달아요. <무소유보다도 찬란한 극빈>
술 모르는 내가 막걸리 마신 것처럼 게걸 차게 개운한 말. 눈부신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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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의 나의 메시지"라는 , 마하트마 간디>의 한 마디 때문에 인도 여행을 시작했고, 여행 중에 우연히 얻은 강석경의 <인도 기행> 덕분에 저녁이 즐거웠던 기억. 책 속에 등장하는 남자가 어느 시인이라는 낭설 같은 팩트에 괜히 설레기도 했죠. (남의 사랑 이야기는 놀라운 법이니까)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치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도 오늘도 지금도 무소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 시지프스 돌 같은 이 방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하다, "이래서 난 부자야"라는 결론을.
부유의 척도가 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 위로를 삼는 건, 오래된 습관. 책의 수량 말고는 숫자를 가늠한 경제적 가치가 없는 삶에서 그럭저럭 넘어가는 하루.
시장에 가고픈데 넉넉지 못한 지갑을 들고 있는 건 슬픔인지 청승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때마다 엄청나게 가난한 골목을 여행하던 인도 생각을 해요.
법정 스님처럼 간디 할아버지의 족적 뒤에서 그저 부끄럽기만 했던 기억을 잊지 말자고. 그럼 누구처럼 가난도 찬연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고.
나와 친구들은 김영승 시인의 <반성> 시리즈?! 를 읽으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김영승 시인의 까까머리 젊은 사진을 보며 인천에 환호했었습니다. 시집을 들고 월미도에도 가 읽고, 수인선 협궤 열차 안에서도 읽고, 윈첼 도넛 집에서도 읽었죠.
"왜 이렇게 집약적이냐. 왜 이렇게 난해하냐"하면서도 시집 표지의 형형한 눈빛을 보며 "잘 나가겠다' 말했습니다 (송구하지만)
그 시집이 외설 경고를 받아 밥상머리에서 어머니한테 숟가락으로 얻어맞았다지만, 수십 년이 지나 첫 시집을 회상하는 시인의 말은 좋았습니다."영광스럽지도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그 시들을 사랑한다"라고.
사람이든 사랑이든 책이든 옷이든 밥이든, 살아오며 세상에 내놓은 무언가에 (그래도) 사랑해..라고 회상할 수 있다면 존경스러운 일. 존중받을 일.
부려놓은 몇 안 되는 일들이 늘 수치스럽고 극한 가난으로 여겨지는 내겐 몹시도 부러운 일. 혹시 그것이 반성을 회피하는 소심 때문이라면 죽어 마땅할 일. B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