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미나리 무침 먹고 싶다아~

by 봄작

봄나물 수북한 가운데 주먹글씨로 눌러쓴 <단미나리 한 단 4천 원>

한 노파가 창창한 점원에게 묻습니다 "단미나리는 뭐고 돌미나리는 뭐꼬?"

구시렁구시렁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데, 디테일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스무 살 청년이 그런 걸 알고 있다니, 계절 천재 아냐?


Signal ↗↘


오래전 오래된 선배가 계십니다. 팝 프로그램의 명작가였는데 어느 날 떠나버렸고 들리는 말에 "출가를 했다"라고.

그 선배 뒤를 쫓아 산에라도 가면 심심하지 않았어요 눈에 들고 발에 밟히는 온갖 식물의 이름을 다 알려줬거든요. 그때도 선배가 "계절천재다"싶었지요. 그녀의 유년이 몸서리치게 부러웠습니다. 얼마나 들판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자랐으면 식물의 꿰찰까. 아님, 멋진 조부조모 슬하에서 자랐나?


단미나리가 돌미나리보다 순하고 무향이고 연하고 조신한 숙녀 같다는 건 검색창을 두드려서 알았습니다. 채소가게 청년도 나처럼 AI 도움을 받았다 한들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를 머리에 담고 있다는 것 만으로 향긋한 일이니까.

제대로 정신 박힌 여인이라면 그런 미나리를 툭 사 와서 손맛으로 두 어 번 무쳐 들기름 뿌려 먹을 텐데. 그런 주변머리 없이 단미나리만 옹알거리면서 지내는 하루. 큰 병원 가서 반년 만에 치른 검사결과를 듣고 반년 치 약을 처방받아서 왔을 뿐, 나이 탓이려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뭐라도 요리해 보고픈 저녁.

밤이 이르도록 아무 짓도 안 할 게 뻔하지만 오늘 알게 된 미나리의 또 다른 종족에 관해서는 잊지 않으려고요.


김사인-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하략...)


김사인 시인이 시를 낭독하는 모습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 난 아주 어린 학생이었는데 유명 가수가 공연을 온 것처럼 황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가열하고 투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시인이 그렇게 소녀 같다니 신기했죠. 그때 조금 알았습니다. 시인은 다혈질이구나. 다혈질이어야 시를 쓸 수 있나 보구나. 변덕쟁이 봄처럼.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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