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애수에 빠져 죽겠어

by 봄작

필러#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명문은

조지훈 시인이 낳은 봄의 걸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로 맺는 그의 시 <낙화>는 노래를 짓기도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데 대한민국의 제도교육이 이 시를 교과서에 실어 국어 시간마다 순살치킨처럼 발골을 해서 온갖 문법을 가르쳤습니다. 중간고사의 단골 문제였고 틀리고 말고를 떠나 내신에 일몫했죠.

그냥 초야에 묻어두어도 얼마든지 회자될 명시인 것을 왜 선전지처럼 온갖 참고서에 박아놓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같은 새벽엔 기도문처럼 포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창가에서 터져 나왔을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그런데 선생님 낙화가 아닌 개화에도 울고 싶긴 해요."

빗밑인 새벽엔 울고 싶어라

어딘가에서 움트는 새싹만 봐도

이젠 없는 것들이 생각나는 봄날도

남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 삼시 세끼 떠오르는 날들도

이 모든 것을 남의 나라 일인 듯 모른 채 피어나는 꽃들의 아침엔

참말로 눈물이 난다.. 고요



오래전 봄날 낮술 마시던 신문사 데스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 애쓰길래, "이문재의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라고 되물었죠. 그가 찾는 시집을 찾아내주자 벌떡 일어나 건배를 들었습니다. 벌건 대낮에 소주잔 들며 옆 방에서 근무하던 이문재 기자를 환호할 때 그 취기가 얼마나 재밌었는지...


오늘은 불쑥 시인 이문재의 <그 많던 청춘들은 다 어디서 떠돌고 있을까>의 절정은 낙화 아침처럼 눈물이 나니


<봄밤은 흥건했으나

속수무책으로 나는, 그대는

하르르 하르르 무너졌으니

나는 그대는 우리들은

늘 맨 처음 아니면 맨 끝이었으니...>


이제 막 중년을 바라봤을 남자들인데 어쩜 그리도 순연하고 곱고 맑을까.

평생 할아버지는 되지 않을 것 같은 남정네들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들고 산책을 하며 보냈을 봄이 무지하니 부러운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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