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오프닝처럼

축복 같았을 불면不眠

by 봄작

"시인가운데 가장 훌륭한 철학자, 철학자 중에 가장 훌륭한 시인"으로 불린 <가스통 바슐라르>는 연금술사 같은 마음을 지녔을까요. 그는 시를 ‘영혼의 현상학’이라 호명했습니다.

시를 현상학現象學이라 비하다니, 너무 리얼하고 살갑잖아요.

Signal ↗↘


M: 김건모- 아름다운 이별


익명의 누군가와 가족을 능가할 만큼 친해지는 일의 하나로 편지가 있습니다. 편지= 설렘이라는 건 라디오가 영원한 매체가 될 것이라는 명제 못지않게 명확한 일이죠. 우연히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에미>와 <레오>의 새 벽처럼이요.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초판이 나왔을 때만 해도, SNS 같은 번갯불 미디어가 없었습니다. 영화 <접속>의 주인공들처럼 미명과 익명의 누군가와 미지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했었죠. 제목도 내러티브도 결말과 도입, 소설 내내 갈등의 밀당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은 참 어였뻤습니다. 끝내 어쩌지 못하고 편지로 만난 그날처럼 편지로 헤어지는 그들 삶에 새벽 3시는 얼마나 아플까. 또 얼마나 애틋해질까.

내게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바람이 불어오는 새벽 3시 같은 두근거림이 있었을 테니, 삶의 현상학을 그대로 풀어 고백하고 위로하고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시인들이 아니었을까. 아무것도 해하지 않고 오로지 존중하고 칭송하는 서정의 새벽이 아니었을까.


소설 중 부분

<...그녀의 이미지는 너무 부드럽고 연약해서 나의 진짜 시선이 가 닿으면 당장 금이 가거나 깨져버릴거예요. 이렇게 인공적으로 생겨난 에미는 하도 섬약해서 내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라져버릴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따지자면 그녀는 내가 날마다 메일로 그녀를 불러낼 때 쓰는 자판 키와 키 사이의 공기에 지나지 않았어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는 고전이 될 만큼 오래전 소설인데 왜 불쑥 이 세시에 에미와 레오의 로맨스가 그리워질까. 마치 나의 추억인 듯.

눈물 한 방울 없이도 심장을 양동이 물에 담가버리는, 꼭 김건모여야 하는 노래 <아름다운 이별>을 새벽 세시의 연인들에게....

이 노래 이 소설 모두 잠 못 드는 새벽 방랑자들에겐 성물聖物과 다름없으니. 이메일 전송하며 두근두근 하던 희미한 시절이 되게 고파옵니다. 주린 배 움켜잡고 빨리 자버려야지 B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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