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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12. 2024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재발은 제발 Don't worry!

'헙...'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통증.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무서웠는데, 몇 번 겪다 보니 익숙해진 것도 같다. 순간 숨을 멈출 만큼 아프지만, 곧 괜찮아지니까. 통증은 자주는 아니지만, 어떤 증상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가령 운전을 하다가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에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느닷없이 훅. 다행히 잠시 숨을 멈추고 진정하면 몇 초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사라진다. 통증을 오롯이 느끼며 얼음!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는 것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니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운전 중에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숨을 멈추는 드라마 주인공의 마음을 이렇게 간접 체험할 줄이야. 


왼쪽 가슴을 안에서 꼬집은 듯, 쥐가 난 듯한,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그 느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혹여나 심장이 문제인가 싶었지만, 통증의 부위가 왠지 다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지만, 왼쪽 가슴이니 아마도 수술 후유증이지 않을까 혼자 미루어 짐작해 본다. 아, 모든 유방암 경험자가 이런 증상을 겪는 건 아니다. 


유방암 표준 치료 - 항암, 수술, 방사선 - 중 수술은 거의 필수로 진행된다. 최근 다른 질병은 수술에 복강경을 많이 이용하기도 하지만, 유방암은 얄짤 없이 외과적 절제. 아 맘모톰 시술도 있지만 보통 양성으로 보이는 경우 시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종양이 있는 수술은 가슴 부위뿐 아니라 림프를 타고 전이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겨드랑이 아래쪽 림프절 부위에도 진행된다. 경우에 따라 모든 림프절을 제거(곽청술) 하기도 한다.  모든 치료는 나름의 후유증을 남기지만, 항암이나 방사선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몸에 데미지를 남기는데 반해, 수술은 말 그대로 수술이다. 


물론 유방암보다 더 큰 수술도 있고, 몸이 불편한 경우도 있으니 이 정도인 거에 감사하다. 다만 수술을 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후유증은 있다. 아까처럼 알 수 없는 통증으로, 혹은 실제 근육통처럼 아픔으로. 주위에서는 심한 경우 림프부종을 겪기도 한다. 


수술 직후에는 가슴보다 림프절 부위가 더 아팠다. 돌이켜보니 가슴은 그때까지 녹다운 상태라 미처 아플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담당 선생님 말처럼 손상된 신경조직의 여파인지, 그 뒤로도 가끔 욱신거리는 통증이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나만 아는 오묘한 느낌. 


예전에 엄마들이 날이 궂거나 추워지면 몸이 안 좋다더니, 신기하게도 딱 그랬다. 날씨보다는 내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서 무리를 하거나, 혹은 몸살 기운이 있거나, 코로나에 걸리는 등 이벤트가 생기면 여지없이 통증이 느껴졌다. 평소에도 누르면 아프지만, 이럴 때는 아픈 부위가 가슴, 겨드랑이를 넘어서 옆구리까지 넓어졌고, 통증의 정도도 더 심했다. 


면역이 떨어지면 몸의 가장 약한 곳으로 반응이 나타난다는 논리적인 설명도 있지만, 마음은 왠지 이쪽에 더 끌린다. '아, 이제 시간이 지나서 다 잊은 거니?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좋지만, 몸을 챙겨야지. 뭣이 중한데?' 하면서 나의 몸이 보내는 소중한 신호. 




사람 마음이 참 약한 게,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그 즉시 마음 한편의 스위치가 켜진다. 의식적인 노력으로 통제되지 않는 자동적인 반응. 일상으로 푹 스며들어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스위치가 작동되면 다독여두었던 걱정 보따리가 열리고는 한다. 항상 그렇듯 불안과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상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암경험자로 살아가면서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 의식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전환해보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한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가슴 전체가 욱신거렸다. 요기조기 꾹꾹 눌러보니 왠지 전과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심지어 옆구리도 아프다. 내친김에 가슴과 옆구리 쪽 뼈를 살살 눌러보니 여기도 아픈 거 같고. 머리로는 아프다고 암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마음은 어느새 두 편으로 갈라져서 힘겨루기를 한다. 


'원래도 컨디션 안 좋으면 아프잖아! 별 거 아니야. 이런 생각할 시간에 좋은 거 챙겨 먹고, 푹 쉬고, 운동 좀 하지~' vs '진단받을 때 멍울도 아팠잖아. 유방암은 뼈전이가 많다는데 혹시? 특별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아플 리가 있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도, 어색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도 않으니까. 다른 암환우에게도, 괜히 잘 지내고 있는데 나 때문에 꺼내고 싶지 않은 생각을 일깨우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혼자서 다시 마음 한 켠으로 꾹꾹 눌러 담아 보려고 노력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건 그래도 환우월드뿐이다. 조심스레 에둘러서 슬쩍 말을 꺼내본다.


'혹시 수술한 가슴이나 옆구리 아픈 적 있으세요? 갑자기 너무 뻐근하게 아파서요'

'아, 좀 무리한 날은 근육도 뭉치고 통증이 있더라고요'

'수술 부위도 그렇고 무릎도 맨날 아파요. 저만 이런 게 아니네요'

'가끔 당기고 뻐근한데, 스트레칭하고 심할 때는 재활치료받으면 좀 나아져요'

'나도 가슴이 망치로 맞은 것처럼 울렸는데, 지나니 괜찮네요'


다들 즐겁고 좋은 이야기와 일상으로 서로를 응원하지만, 시크한 척 툭 던진 질문에 각자 갖고 있던 힘듦과 고민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아프고 걱정되지만 혹여나 걱정을 끼칠까 봐 속으로만 전전긍긍. 웃프게도 모두 함께 여기저기 소소하게 아프다며 고백했다. 기대치 못한 공감과 위로, 덤으로 마음의 안심까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암을 겪지 않았어도, 누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아플 수 있다. 비단 병이 아니어도 감기가 걸릴 수도 있고, 길을 걷다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조금 아프거나 불편하더라도 혼자 웅크리고 동굴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들어가 봐야 컴컴하고 막막하기만 할 테니까. 본능적으로 걱정이 될 수 있지만, 잘 구슬리고 도닥여서 거기서 멈추어 봐야겠다. 혼자서 어려울 때는 든든한 전우들께 SOS를 치면서. 다만 암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했기에, 조금 세심하게 몸을 관찰하고 아껴주는 노력은 잊지 않기! 몸이 보내는 신호에만 집중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생각은 뚝. 


걱정이 많은 소심쟁이지만, 암경험자가 된 뒤에 즐겨하는 말. 바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 괜히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느라 쓸 에너지와 시간, 마음의 공간이 아깝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오롯이 느끼고 받아들이기. 그런 마음으로 채워가기에도 아쉬운 소중한 시간이니까.


*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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