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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15. 2024

신약 관련 국민청원, 작은 정성의 힘

암환자에게 소중한 '존버', 함께 해주세요.

어릴 때만 해도 '암'이라면 화들짝 놀라는 병이었다.(지금도 대체로 그렇기는 하지만) 평균 수명이 60세 중반이라 환갑이면 동네잔치를 벌이던 시절이니 오죽할까. 그랬던 게 눈부신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명도 늘고, 병에 걸려도 오래오래 잘 사는 경우가 많아졌다. '암생존자' 혹은 '암경험자'라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의학의 발달에는 당연히 신약의 개발이 큰 몫을 차지한다. 새로운 병도 많이 생기지만, 이를 위한 치료약의 개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들 '암도 이제 치료약이 많아서~'라고 말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암환자가 되기 전까지는. '약이 있으면 치료하면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해야만 하는 명제가,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령 약이 너무 고가라서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암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부담이 덜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약으로만 치료가 된다면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비급여 치료제는 비싼 경우 회당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고, 기간도 길게는 몇 년이 소요된다. 재벌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걸 아무 부담 없이 감당할 수 있을까. 


비급여 치료제의 급여화(건강보험 적용)를 위한 청원이 진행되는 이유다. 간혹 급여화로 건강보험의 재정부담이 커지고, 내야하는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나 반대 의견도 있다. 어떻게 본인이나 혹은 가족들은 평생 아프거나,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하는 걸까.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사회적인 안정망을 갖추는 건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건강보험이 원래의 목적인 국민 건강 보호와 증진에 맞게, 올바르게 집행되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데, 정작 필요한 일에는 쓰이지 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 외에도 해외에서는 이미 임상적으로 치료효과가 입증되어 상용화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허가가 나지 않거나, 여러 암종에 효과가 있지만 특정 암종으로만 사용이 제한되거나, 초기에 사용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재발/전이된 경우에만 쓸 수 있거나, 심지어는 비급여 약제인데 치료 횟수 제한 규정때문에 아픈 몸으로 해외까지 가서 원정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정치/사회 이슈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국민청원'과 친숙해졌다. 각종 신약 관련 불합리한 제도 개선이나 사용 승인, 급여화 등 많은 청원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혼자라면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겠지만, 환우들과 가족,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려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에 신약 승인이나 급여화, 제도 개선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열성적인 사회운동가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정치/사회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성격상 주변에 폐를 끼치지는 않지만, 타인을 더 위하거나 먼저 배려하는 이타심이 넘치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암 치료와 관련된 국민 청원만 보면 마음이 동한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블로그에도 환우카페에도 글을 쓰고, 단톡방에도 여기저기 공유를 한다. 웬 오지랖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괜찮다. 폐 끼치지 않는 이런 오지랖 정도는 내 마음 가는대로 하며 살고 싶다. 청원이 필요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내 가족이 될 수도, 혹은 누구라도 될 수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필요한 거라면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작지만, 그 마음이 모이면 큰 힘이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을, 공동체로서 함께하는 따뜻하고 단단한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내 게시판에 유방암 신약인 엔허투의 중증 적용 관련 국민청원 도움을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친한 지인도 아닌, 사적 관계도 아닌, 비록 온라인이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동료들에게 암경험자임을 밝히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라 믿었기에 용기를 내었다. 암경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바라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썼던 글로 마무리해 본다. 




저는 평범한 워킹맘이었던 어느 날 갑자기 유방암 환자가 되었고, 

1년여의 치료를 마치고 복직을 했습니다.

유방암은 여성암 중 발병수가 가장 높아 한해 2만 명 이상에 이릅니다.  

젊고 건강했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부인, 동생, 언니, 누나, 여자친구, 엄마,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일입니다.

이번 국민청원의 대상인 엔허투는 해외(미국, 일본등)에서는 

이미 유방암뿐 아니라 다른 암종의 치료제로 쓰이고 있을 만큼 그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말 국민청원을 통해 신속승인을 받아 치료를 받을 길은 열렸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개인이 알아서 수입을 해야 했습니다.) 


높은 비용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3주마다 700~800만 원, 한 달 급여보다 많은 치료비, 

평범한 가정에서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삶을 연장할 수 있는데, 포기를 해야 하는지. 

환자 본인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고, 

가족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선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약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약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포기한다면,

남겨진 이들 또한 나의 엄마를, 부인을, 동생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엔허투에 중증 적용이 될 경우 본인 부담률이 감소해서 

더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예전보다 암의 생존율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고, 

그렇기에 암환우들에게 '존버'가 절실합니다.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또 새로운 약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엔허투는 존버를 가능케 하는 한 줄기 희망입니다.

암 진단 후 친했던 환우들을 멀리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아온 평범한 30~40대 여성들이었습니다. 

문득문득 조금만 더 버텼다면 더 좋은 약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생명을 붙잡을 수 있는 일입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잠시만 시간을 내어 도움 부탁드립니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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