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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Feb 25. 2024

내 삶이 더욱 행복하고, 충만한 이유

언제 어디서나 지켜보고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오늘도 선물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문처럼 이야기한다. 광고에서처럼 환한 햇살을 맞는 상큼한 표정은 아니지만...  대체로 알람을 서너 번 누르고 마지못해 일어나거나, 혹은 채 눈이 떠지지 않아 한쪽만 겨우 뜬 상태. 비록 아름다운 모양새는 아니지만, 소중한 하루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나의 육신과 마음은 복잡다단한 현실 세계에 있다는 것. 감사와 포용으로 무한 긍정을 펼치고 싶지만 아직 수양이 턱 없이 모자라다. 특히 회사에서 맞닥뜨리는 나의 통제권을 벗어난 상황들. 예전보다는 양호하지만, 스트레스가 없는 직장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나도 모르게 스팀이 올라오는 조짐이 보이면, 순간 하늘을 본다. 심호흡 한 번 크게 들이쉬면서.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아껴주던 언니들이 있으니까.


23년 차 베테랑 시스템 개발자였던 골드미스 윤진언니. 평범한 직장인에서 진단으로 180도 달라진 삶을 맞게 공통점 때문일까, 우리는 잘 통했고 언니는 환자로서는 선배인 나를 의지했다. 결혼생활이라는 때(?)가 묻지 않아서인지, 순수하고 아이 같았던 사람. 한 번 웃음보가 터지면 눈물까지 흘리며 호탕하게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처음에는 돈이고 뭐고 스트레스가 겁나니 일을 그만두고 좋고 좋은 들어가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하지만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면 복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살살 치료와 병행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시 아침마다 출근하고, 때로는 언성 높여 부딪히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던 일상으로 돌아가 존재감을 느끼고 싶다고. 두렵기도 하지만, 내가 솔선수범하면 따라갈 거라며 응원했다. 그랬는데 차마 출근 인사를 전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빨리 하늘로 소풍을 떠날 줄은 몰랐다.


첫 아픔이 조금씩 아물어갈 무렵, 하늘나라에서 혼자라서 외로울까 걱정됐던 걸까. 두 번째 슬픈 이별이 찾아왔다. 무한 긍정 오뚝이 소연언니, 아이를 서울대에 보낼 만큼 공을 들이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재테크까지 다재다능했던 사람.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다. 160센티도 안 되는 작은 체구, 항상 웃으며 힘들어도 열심인 모습, 심지어 항암 후에 다시 자란 곱슬머리 모양까지. 언니는 나를 보면 진단 전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유난히 예뻐했다.  출간 소식에 누구보다 감격하고 기뻐했다. 치료를 마치고 복직까지 하는 게 장하다며, 그래도 항상 무리하지 말고 몸을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훌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나에게 실어 보냈던 걸까.


암 진단 후에도 생각이 많아 고민도, 걱정도 많았던 나에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조금 이해하자고 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려면 그래한다고. 뭐가 중요한 항상 잊지 말라고. 힘들면 언제든 그만해도 좋지만, 암경험자뿐 아니라 직장인으로도 다시 일상을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소중한 누군가와의 이별은 그게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함께 힘겨운 전쟁을 경험했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왕수다도 떨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과 이야기가 있어 감사하다. 생각지 못했지만 우연히 맞닥뜨리는 일상의 순간에서도. 윤진언니가 좋아하던 아비코 카레, 아이에게 선물해 준 동화책, 명동 나들이에 들른 광화문 거리, 소연언니가 좋아하던 커스텀 커피, 광교 호수공원과 밀도 베이커리, 어디선가 들리는 호탕하고 밝은 큰 웃음소리까지...


한없이 선하고, 따뜻했던 사람들. 빡빡머리로 만나서 더벅머리까지만 본 웃픈 인연. 그래도 마지막 배웅길에 암을 만나기 전 짧고 단아한 단발머리의 윤진언니를, 항암 붓기 없이 화사하고 환하게 웃는 소연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고운 모습으로 소중히 마음에 담아두려고 한다.


한 번씩 마음이 힘들 때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내가 삶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행복하기를 무한 응원해 줄 언니들이 있으니까. 언제 어디에서든 나를 바라보고 지켜줄 테니 이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우리 타샤 지금도 잘하고 있어. 언니들이 항상 응원하는 거 알지!'

당연하죠! 응원 많이 해주세요. 언니들 몫까지, 세 배 아니 그 이상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게요.

먼 훗날 빨간 원피스 입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서 하늘 나라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하고 고마워요.



Image by nini kvaratskheli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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