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냄. 적을 이기어 굴복시킴.(위기를 극복하다. 불황을 극복하다. 가뭄을 극복하다.)
암 진단 직후 황망함과 억울함, 두려움 등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제대로 정신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불타는 전의가 마음을 가득 채웠다.
‘반드시 극복해 내겠노라!’
예고 없이 나타난 갑툭튀 암 따위에게 열심히 살아온 시간과 노력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아서, 아직 내 눈에는 마냥 어리기만 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속으로만 삭이는 남편과 날 먼저 보내고는 살 수 없다며 붙잡고 엉엉 우는 엄마를 위해서, 악하고 못된 사람들도 잘만 사는데 착하게만(적어도 내 생각에는) 살아온 게 억울해서... 암에 대한 분노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전투력은 급상승했다.
다짐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각오를 다지고 습관을 바꿨다. 해롭다고 의심(?)되는 음식은 철저하게 끊고, 건강과 병에 관련된 책을 보고,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했다. 마치 열심히 공부하면 시험에서 백점을 맞을 수 있다는 듯이. 기대와 달리 채식 위주 식사로 한 달 만에 체중이 4kg이나 줄어서 거울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책을 아무리 봐도 도무지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결과와 무관하게 각오와 의지는 흐트러진 멘탈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암'과 '극복'이란 단어 사이 어딘가가 묘하게 불편했다. 누군가가 암에 대해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 더욱 그랬다. 특히 치료를 마친 뒤 '암을 극복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면 어찌할 줄을 몰랐다. ‘온갖 시련과 역경을 극복한’이라는 수식어는 멋지지만, 그 대상이 ‘암’ 이 될 수도 있는지 의구심과 약간의 어색함. 나의 기준에서 극복의 대상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어야 하는데, 암이 과연 강철 같은 마음과 노력만으로 정복할 수 있는 걸까? 극복의대상이 무엇일까? 암세포? 치료의 과정?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재발을 하거나, 죽음을 맞는다면 암을 극복하지 못한 나약한 사람이 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물론 안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응원하는, 용기를 북돋는 말이라는 걸. 힘든 터널을 잘 지나온 이를 위한 존경과 축하라는 걸. 다만 극복 vs 극복하지 못함의 프레임에서는 후자는 의문의 1패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혹은 누군가는 그 말에상처받을지도 모른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수더분하면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가리는 거 하나 없으면서) 왜 유독 암 얘기만 나오면 예민하고 까탈스럽냐고 핀잔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간이 들리는 ‘암을 극복한’이라는 문구가 편치 않은 건 비단 나뿐일까.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암이 의학적으로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현재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올림픽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딴 선수 뿐 아니라,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을 한 선수들도, 혹은 대표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꿈을 향해 노력한 수많은 선수들도 모두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꿈을 향한 땀과 노력, 굳은 의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암도 그렇게 바라보면 어떨까. 어느 날 갑자기 암이라는 시련을 만났지만, 삶을 향한 의지를 다지고 이후의 시간을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위대한 성과나 결과치를 얻어내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시련과 역경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저 견뎌내는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힘든 치료의 과정을 견디고 있는 분들, 의학적 완치 판정은 어렵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잘 관리하며암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분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계속된 치료로 많은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감사하며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간다. 암을 경험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혹은 이미 스며들어 잘 지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또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