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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Jul 29. 2024

암, 모바일뱅킹 & 나의 돈

내 돈은 내 돈, 남편 돈은 내 돈, 전부 내 거하자~

암경험자를 주제로 글을 쓰지만, 이제는 일상에 푹 스며들어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잘 의식하지 못하고는 한다. 다만 한 가지, 그때의 선택으로 아직도 영향을 받는 게 있으니 바로 돈, 아니 정확히는 자산의 명의.


진단 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생각보다 컸다. 특히 상급병원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나게 노는 애들을 보고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하튼 속세초연하고, 남들 말로는 돈에 욕심 안내는 순수한 남편. 자산 관리는커녕 공과금 한 번 내본 적이 없는데. 아, 그러고 보니 입원 중에 돈을 이체해 달라는 말에 "어떻게 휴대폰으로 돈을 보내? PC로 해야지!"라며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던 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시대에 몇 안 되는 자연인 같으니라고.

 

그렇기에 혹여나 내가 없으면 얼마 안 되지만 이리저리 얽혀있는 돈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죽을지도 모르는 와중에 이렇게 한없는 오지랖이라니. 실은 그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걱정보다는(다 큰 성인이야 어떻게든 살겠지), 먼저 가더라도 책임져야 할 토깽이 같은(이라고 썼지만 실은 나보다 덩치가 )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불릴 능력은 차치하고, 있는 거라도 추슬러서 어디 있는지 몰라서 못 쓰는 일은 막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함. 탁월한 신뢰를 바탕으로 내 수중에 놓여진 형제 곗돈과 친구들의 여행 곗돈도 분리해놔야 하고...


이 또한 내가 가고 나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만일 같은 상황이 된다면(물론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책임감으로 같은 선택을 같다.


여하튼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르는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신속히라 쓰고 실상은 오두방정을 떨며 홀라당 정리를 했다. 맞벌이 13년, 그간 모두 내 명의로 되어 있던(이라고 하지만 실상 얼마 되지 않는다는 슬픈 진실) 부동산 명의, 예금, 현금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남편에게 옮겼다. 이 행위의 내막에는 혹여나 내가 이렇게나 아프니 이제 좀  든든하게 지켜주며 부양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깔려있었다.

 

그런데 웬걸. 3년이 지난 지금. 감사하게도 치료를 잘 마치고, 복직도 했다. 여느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꼬박꼬박 월급도 받아오는 와이프이기도 하다. 이걸 깨닫는 순간 억울했다. 그에게로 옮겨진 나의 것들이 떠올라서. 어차피 같이 벌고 같이 모은 거니 공동의 소유지만, 왠지 기분이 그렇다. 내 이름표를 달고 있어야 내 것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제 평균 수명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이니, 과거 행적은 싹 지우고 냉큼 갖고 오고 싶지만 이게 또 쉽지거 않다. 부동산은 계약 기간, 명의 문제가 있고, 어디서 주워들은 부부간 계좌 이체는 세무조사 대상이라는 말이 신경 쓰인다.


이재에 밝지 못한 남편을 핀잔하지만, 나도 아끼고 모을 줄만 알았지 재테크는 꽝이었다. 난데없이 벼락거지가 되는 대혼란의 시기를 겪었지만, 그래도 한 푼 두 푼 모은 거라 더 소중한 내 돈~


한편으로는 아프고 힘들 때 나를 살뜰하게 챙기며 조금이라도 잘했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할리 없다고 그를 또 타박해 본다. 나의 영원한 욕받이요, 샌드백이인 듯 싶지만, 실상 화가 나면 서로 묵언수행을 하는 부부인지라 그냥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한 번 마음이 동하니 뭐에 씐 것 같다. 혹시 남편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엉뚱한 상상도 한다. 40대 중반 남자들의 일탈은 많고도 많지 않은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작전주에 말려 주식 투자를 한다던가, 젊은 파이어족을 만들어낸 핫한 비트코인도 있고, 혹은 월급쟁이 노예는 그만, 나도 이제 사장님을 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치진 않을까 하는. 막상 쓰고 보니 뭘 해도 인생역전에 도전할 만한 돈도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록 부와딱히 연이 없지만, 신혼 때부터, 아니 연애 때부터 공인인증서와 OTP까지 순수히 넘겨주던 그. 다른 건 몰라도 착한 심성 하나는 우주 최강이다.(다른 모든 단점을 희석시키기 위한 과장과 최상급 표현) 다른 남자들처럼 흔한 골프, 술, 낚시 등 일체 돈 드는 취미 생활도 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음악과 EPL 관람. 이러려던 게 아닌데 왜 말하면 할수록 나는 속세에 찌든 속물이고, 그는 순수한 영혼처럼 묘사되는 걸까. 좌우지간 내가 걱정하는 딴짓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걸로. 그냥 혼자 머릿속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우주 한 바퀴를 돌고 온 셈이다.


이놈의 암 때문에 이게 뭔가 싶다가도, 덕분에 남편은 이제 모바일 뱅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런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평생 배워야할 필요성, 내지 배울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본인 명의의 자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내심 든든해한다. 실은 모든 걸 넘긴 듯 억울하다 외쳤지만, 사실 다 준건 아니다(더 이상은 노코멘트) 둘이 각각 딴짓을 할 것도 아니고, 일병장수 백세까지는 살 거니(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리라), 딱히 누구에게 있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간 나의 일로만 여겼던 현실적인 돈에 관한 문제에 대해 그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평생 혼자 지고 갈 뻔한 짐을 암 덕분에 나누어질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걸 찐하게 배웠으면서도, 일희일비 안달복달하는 나. 천성불변의 법칙도 아니고 좀 내려놓고 편히 살자고 셀프로 다독여본다. 순리대로 천천히 가면 되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하나씩 다시 가져오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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