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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Oct 08. 2024

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너!

니가 없어도 행복하게 지낼게

암경험자 4년차. 그로 인해 생긴 제약보다는 덕분에 새롭게 얻은 좋은 점들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다만 딱 한 가지 쉽게 떨쳐지지 않는 아쉬움은 바로 술! 암 위험인자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며 목청 높여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내심 켕기는 부분이었다.


물론 매일 술 없이는 살지 못하는 중독자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법적으로 허용된(실은 살짝 그 이전) 나이부터 시작된 즐거운 음주 생활이랄까. 애써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보지만, 기억 저편 깊숙이 남아 있는 부끄러운 취객으로서의 행위들이 머리를 스친다.


술을 좋아하고, 한 때는 잘 마셨다. 약간 취기가 오르면 살짝 알딸딸하면서도 업된(나만 그런지 같이 마시는 이도 그런지는 알 수 없다) 흥겨움이 좋았다.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제라 주장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셨단다. (어랏, 과외, 알바, 공부, 동아리로 바빴던 기억 밖에 없는데? 또 다른 내가 있었던 건가!)


재밌는 건 홀짝홀짝 마시는 소주는 괜찮은데, 맥주는 마셨다하면 꽐라가 됐다. 누구 말마따나 도수가 아니라 양에 취했던 걸까. 술이 잘 받는 날이면 끝맛이 유독 달던, 아지랑이 같은 김을 내뿜던 얼음처럼 차가운 소주. 탁 털어 넣는 순간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찌릿한 위치 신호를 보내며 불타오르는, 강한 향 만큼이나 매력적인 백주. 아무리 고급이어도 섞어마시는데는 장사가 없음을 증명해주었던 양주. 각양각색의 매력이 있지만, 나의 원픽은 소주였다. 서민의 술이라 불릴 만큼 착한 가격과 중독적인 각일병(각자 한 병) 절도를 지키는 단호함.      

아쉽게도 주위 사람들은 나이만큼 주량이 늘던데. 두 번의 출산과 모유수유로 인한 긴 금주 때문인지 주량은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렸다. 빈도와 깊이는 줄었지만, 그래도 종종 즐기는 술자리와 반주는 꽤 즐거웠다. 물론 다음 날의 주취는 흥겨움에 비례하여 따라오는 세트였지만.




그랬는데 암환자 타이틀을 달게 된 순간부터 단호한 금주가 시작되었다. 어쩌면 진단이 조금 늦어졌다면 그만큼 술을 더 마셨을지도? 조선시대 금주령에도 밀주는 있었건만, 암환자에게 이제 술은 안녕. 과거의 음주력을 고려해보면 과연 암에 가장 금기시되는 두 가지(금연, 금주) 중 하나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금주가 가능했을까.


당장 살고 죽는 게 달렸는데 술 따위가 중요할 리 없다. 당연히 그래야하는 거고,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은, 특히 나의 마음은 간사하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더니만, 시간이 갈수록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뺀다.


굳이 유리한 해석을 해보자면 그리스 신화에도 나올 만큼 인간을 강력하게 유혹하는 술 아니던가! 꽐라가 되어 깊은 참회와 반성, 각오를 다지다가도 며칠 지나면 무한회복력을 지닌 듯 스멀스멀 생각이 나는 것처럼. 얼마 전 술을 먹고 필름이 끊겨 노숙(?)하게 된 후배. 경찰서에서 가족에게 인계되어 하늘같은 와이프님께 금주령을 받았지만, 짧은 숙려기간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잊혀지지 않는 풍경. 한여름밤 호수공원에서 치맥을 즐기는 사람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항암 치료 중이라 두건을 쓰고 걷던 나. 뽀얗게 거품이 차오른 맥주, 갓 튀겨내어 기름이 자글자글 바삭한 치킨, 평범하지만 즐거운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전히 기억이 나는 더운 바람과 복잡했던 마음. 


어느 날에는 신나게 넙죽넙죽 술을 받아 마시며 더 없이 행복했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당황했고, 공포감과 죄책감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에서 오는 박탈감인 것 같다. 술 없이 못 사는 주당도 아니고, 매일 마시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애걸복걸 한 걸까. 마치 정전이 나서 불이 꺼지니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학생처럼.




지금도 여전히 셀프 금주령은 유효하다. 다만 이제 술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여유가 생겼다. 치료와 후유증으로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쭉 펴져서일까. 회식 후 다음 날 괴로운 얼굴로 해장라면을 찾는 동료들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 숙취와 작별하니 시간을 더 알차고 보람있게 쓸 수 있다.


맥주의 짝꿍 치킨.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검사나 진료날을 치팅 데이 삼는 센스를 발휘한다. 기왕 먹는 거 맛있게. 쪽쪽 손가락에 묻는 양념까지 빨아 먹는다. 아이들과 평등하게(?) 시원한 탄산수로 건배를 외치며. 이것이 진정한 꿀맛!


아주 특별한 날(어떤 날이냐고? 그냥 내 마음대로 정한 날)에는 무려 무알콜 맥주를 들이킨다. 벌컥벌컥. 감사하게도 최근에 무알콜 맥주도 다양해졌다. 무알콜에 감사하며 감지덕지 한 게 아니라 브랜드를 골라먹는 품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완전 무알콜은 아니라구요? 아주 쬐~금 든 건데 봐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찾게 된 치맥의 소중함.


굳이 20년간의 부끄러운 음주력, 치맥을 부러워하던 소심한(조금은 찌질했던) 흑역사를 고백하는 건, 이로 인해 당신의 치맥이 더 즐겁고, 더 맛있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술,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되었지만, 
황금 같은 이삼십대에 희노애락을 함께 해주어서 고마워~
이제 네가 없이도 행복하게 즐겁게 잘 지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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