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좌충우돌 탕탕

다시스물셋

by 아슈엔


16화. 사고뭉치

동아리 술자리가 있던 날, 도재는 중간중간 서민을 챙겼고, 서민은 호프집의 분위기를 지휘하듯 덩실덩실 신나게 마셨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서민의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과하게 커지자, 도재가 조용히 가방을 챙긴다.


“나 먼저 서민이 누나 데리고 일어날게.”


친구들은 이 상황이 익숙해 간단한 손짓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가자”


도재의 손에 이끌려 나온 서민. 한창 오르던 흥이 겨울을 알리는 공기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괜히 심술이 난 서민은 갑자기 어둠을 의자 삼아 길바닥에 앉아 두 팔로 자신을 결박시키고 우렁차게 외친다.


“2차 갈래!”


도재의 자상한 입가에 한숨이 스쳐 지나간다. 도재는 허리를 숙여 서민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았다.


“김꿍돌! 가자”


서민은 잡힌 손을 기우뚱 빼낸다.


“딱 한 잔만, 낭군, 낭구우운!”


서민이 검지를 들어 입술에 붙이며 익숙하게 애교를 던진다. 도재의 표정과 몸이 모두 정지하며 서민의 얼굴에 시선이 따갑게 꽂힌다. 술에 취한 서민조차 느낄 만큼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도재는 서민을 잡거나 일으키지 않고 그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따라와. 안 그러면 나 진짜 화낼 거야.”


눈이 동그래진 서민은 벌떡 일어나 도재에게 붙는다. 마치 장난감을 사 달라 마트에 드러누웠던 아이가 아빠의 호통에 울먹이며 포기하듯.


“따라갈게… 낭군…”


도재는 서민에게 더 이상 말도, 눈빛도 주지 않았지만 서민이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차가운 겨울의 결을 타고 어묵 국물의 김이 모락모락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눈물도 없이 막혀버린 서민의 코에는 그 냄새가 닿지 못했다.


서민은 알고 있다. 도재는 늘 옳고 바르다는 걸. 그에 반해 자신은 항상 부족하고 그저 두 살 많은 철부지에 불과하다는 걸. 그래서 바뀌고 싶어 했지만, 마음먹는다고 금세 달라지지 않았다. 말없는 한숨에서 걱정과 실망을 알아챌 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엔 그런 부조화도 있었다.


학교 식당, 서민이 식판을 내려놓고 의자를 빼내어 앉는다.


“김서민!”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잠시 멍하니 있었던 듯하다. 윤정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왜 이렇게 아까부터 넋이 나가 있어? 아직도 술이 안 깬 거야?”


서민은 숟가락을 들어 애꿎은 밥만 푹푹 찔러 댄다.


“어제 술 취해서 집에 안 간다고 버텼다가 도재가 화냈어”


윤정의 젓가락에 들려 있던 비엔나소시지가 흔들린다.


“이야~ 전도재, 사고뭉치 누나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네. 하하하!”


밥풀이 잔뜩 묻은 숟가락을 입에 물며 삐죽거리는 서민.


“왜 그래~ 내가 뭐 매일 그러나. 그리고 남자친구가 좀 같이 2차도 가줄 수 있는 거지. 어제 정말 무서웠어. 도재.”


윤정이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려 얼굴을 받히고 서민을 가만히 바라본다.


“서민아. 너 도재랑 사귀고 있잖아. 예전처럼 새벽까지 술 먹고, 취해서 널브러지고, 이런 건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 도재 속 썩어.”


윤정도 서민과 같이 술을 좋아하고 함께 자주 마시지만, 윤정은 확실히 서민과 달랐다. 그래서 서민은 자꾸만 윤정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였다.




17화. 어서 와, 모텔은 처음이지?

도재에게 2차를 외치다 조용히 꼬리를 내린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서민의 절친 재영이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다. 소주에 묵은 수다, 그리고 오돌뼈까지 곁들인 그 밤은 즐거웠다. 서민은 재영의 막차 시간이 다가오자 아쉬움이 밀려온다.


“야, 내 방에서 자. 난 윤정이네 가면 돼.”


술기운에 동공이 살짝 풀려가던 서민은 망설임 없이 말한다. 하지만 술자리를 파한 후 서민은 윤정의 집 앞에서 당황한 채 얼어붙는다. 전화도 초인종도 묵묵부답. 그제야 서민은 자신의 충동적인 선택을 후회한다. 엄지 손가락을 잘근잘근 물다가 결국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르고, 고장 난 로봇 같은 의미 없는 발걸음만 반복한다. 새벽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거친 숨, 그리고 겨울 밤보다 차가운 얼굴.


“미안해…”


고개를 푹 숙인 서민의 정수리가 작게 말했다. 도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서민의 작아진 어깨를 본다. 화가 난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걱정과 안도의 눈빛이 쏟아져 나온다.


“일단 어디든 들어가자.”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걱정하는 도재를 보며 서민은 미안함이 가득 올라 가슴이 아린다.


모텔. 어찌어찌 키를 받아 어찌어찌 현관까지 들어가긴 했는데, 서민은 바짝 굳은 몸을 벽에 의지한 채 신발을 벗지 못하고 서 있었다.


“걱정 마. 아무 일도 안 생겨.”


먼저 성큼 들어가 방을 살피던 도재가 멈춰서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비치되어 있는 그 모텔 방처럼, 반듯한 도재는 선을 넘지 않았고 그의 말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날 밤 서민은 그의 조심스러운 배려에 더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 안지도,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그저 손만 꼭 잡고 잠든 밤이었다.


창 밖으로 아침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서민은 조용히 눈을 떴다. 제발 꿈이었으면 하는 이 난처한 상황이 너무나 밝고 생생한 현실이다. 이불을 끌어올리다 말고 몰래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리는 순간, 도재의 목소리가 먼저 깨어났다.


“어디 가려고.”


서민은 나가려던 다리를 얼른 이불 안으로 데려온다.


“… 잘… 잤어?”

“아니, 못 잤어.”


그 눈이 천천히 서민을 향해 뜨인다. 부드러운 동작이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어젯밤 위험하단 생각은 했어?”


갑자기 빳빳한 베개에서 락스 향이 올라온다. 서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음… 그땐 미처…”

“다음엔 절대 그러지 마”


도재는 단호했다. 그의 말엔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그만큼의 실망도 함께 있었다. 서민은 고개를 숙인다.


“네…”


어느새 존댓말이 나왔다.


이 날 이후 서민은 움츠러든 마음으로 행동을 더욱 조심했지만, 한 편으론, 차라리 도재도 비슷한 실수를 해서 자신이 더 당당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도재는 서민의 실수는 귀엽게 봐주더라도, 자신의 실수는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의실. 서민이 가방을 책상 위에 올리는 순간, 윤정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온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날 밤 도재랑 같이 있었지?”


깜짝 놀란 서민이 윤정의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며 속삭인다.


“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조용히 좀 해!”

“하하하! 맞네, 맞아! 요거 봐라~ 벌써 그런 사이 됐구나?”


서민은 의자에 털썩 앉아, 윤정의 어깨너머 허공을 보며 중얼거린다.


“아무 일도 없었어. 진짜... 그냥 손만 잡고 잤어.”


웃음 짓던 윤정의 표정이 멈칫한다. 눈이 커진다.


“뭐야, 전도재. 여자친구랑 단둘이 밤을 지새우면서 손만 잡고 있었다고? 몸에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냐?”


그 말에 서민은 급히 손을 휘휘 흔들며 말을 막는다.


“야, 무슨 소리야...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 이상하게 하지 마.”


윤정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젖힌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 서민은 교재와 필통을 꺼내며 시선을 피한다. 더 설명할 말이 딱히 없다. 그저 모른 척 넘어가고 싶을 뿐.




18화. 뚜루뚜루뚜 따다다!

외박 사건으로 서민의 가슴엔 도재의 걱정과 실망이 강력하게 입력이 되었다. 이후로는 절대 재영과 1:1로 만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며,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먼저 연락하겠다며, 도재에게 먼저 맹세했다. 그리고 도재 안에 침전되어 있을 상한 마음을 용해시키고자 최선을 다해 애교를 부리고 도재가 좋아하는 예쁜 짓들을 해 본다.


도재 기준 서민의 예쁜 짓이란, PC방 가서 스타크래프트를 하지 않는 것, 용돈 씀씀이를 가계부로 적어 보여주는 것? 그리고 매일 토익 공부하는 거. 하지만 평소 잘하지 않던 것을 꾸준히 하려니 서서히 지쳐갔다. 그래서 서민은 한 방을 노려본다.


같이 강의를 듣고 나온 어느 날, 서민은 도재의 손을 끌어 강의동 뒤 편으로 데려간다.


“뭐 하려고?”


도재는 어리둥절은 하지만 뭔가 사고 치려는 낌새를 챈 듯 의심의 눈초리다. 서민은 그런 도재를 세워 두고, 기마 자세인 듯한 포즈를 취하고 두 팔을 격렬하게 절도 있게 위아래로 번갈아 흔들어 가며 오로지 도재만을 위한, 당시 최대 유행이었던 욘사마 쇼를 보여준다.


따랏따랏따 따랏따 랐다 따랏따 랏따 뚜두두!


얼굴 근육을 별로 쓰지를 않아 많이 퇴화해 버린 도재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울렁울렁 꿈틀대더니,


“파하하하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가출한 얼굴 근육들이 모두 일괄 귀가하는 광영의 찰나였다.


“하하하! 웃어서 배 아픈 건 처음이야! 꿍돌이 너 정말 대단하다, 하하하!”


도재에게 큰 웃음 주는 건 서민의 의무이자 큰 기쁨이었다. 그의 거침없는 웃음소리가 마음에 앙금들을 흩으며 기분 좋게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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