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것들을 바라보며 버티자
오늘 아침에 샤워를 하면서 유튜브를 보다가, 정말 공감 갔던 말 하나가 있었다.
"항상 그런 느낌을 받아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괜찮은 세상이라고 나는 느끼면서 아직까지 살고 있는데, 뉴스를 보면 이거는, 사람이 살면 안 되는 세상인 거예요. 어제 뉴스 내용이 뭐였냐면, 몽골 사막화, 저출산 문제, 그리고 어떤 아저씨가 칼 들고 거리 횡보 하는 거랑, 십 대 애들이 무인 계산기 저금통 터는 거 나왔었고, 여러 화재 사건들 나왔었고, 어 뭐야, 이런 느낌을 약간 받았어요."
정말 공감이 갔다. 특히 ‘어떤 아저씨가 칼 들고 거리 횡보하는 거’ 말할 때 빵 터졌다. 나도 저런 기사들을 보면 정말이지, 인류애가 파사삭 떨어지고,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싫어지고, 의심을 먼저 하게 되기도 한다. 또 실제로, 그런 의심을 하지 않으면 쉽게 이용당하기도 하기에, 어쩔 때는 그러한 방어기제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부정성편향, 확증편향
예전에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보았을 때 알게 된 개념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에 안 나오고,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에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맨날 있는 일들은 뉴스에 안 나오니까, 99.9%의 행복한 사람들 얘기는 안 나오고, 0.1%의 괴상한 사람들만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팬데믹’ 시기에, 확실하게 느꼈는데, 당시 뉴스에 별의별 ‘혐오’ 이야기들이 나왔다. 특히, 해외에서 ‘동양인 혐오’가 심해졌다면서, 해외여행을 조심하라는 얘기들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가면, 개죽음을 당할 것처럼 언론은 보도했다. 그러나 정말 그러했나?
당시 해외에 있던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뉴스에서 말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상황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뉴욕 여행을 갔을 때 확실하게 느꼈다. 물론 세상에 뉴스에 나올만한 라이또들은 있다. 나도 거기서 그런 사람을 아예 안 본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주했던 것은 99%의 선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친절을 베풀면, 친절을 되돌려주는 상식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어쩌면 차가워 보이는 저 사람도, 무서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기 싫고, 다치고 싶지 않아 하니까. 그래, 그래서 ‘친절’과 ‘다정’이라는 것이 중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에에올’의 메시지를, 이젠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삶이란 비극에서 중요한 것은, 유머를 찾아 마음껏 웃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바라보며 마음껏 웃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상상에 잠기고, 자연에 둘러싸여 바람과 삶을 느끼고, 웃는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sns에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내 모습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내 모습들. 그것이 내가 기억할 내 모습들이겠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한 삶 속의 아주 소중한 것들을, 결코 작고 소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설령 지금 당장 찾지 못한대도, 괜찮다. 그냥, 세상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내가 알지 못할 뿐이라는 걸 인정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실제로 내가 지금 처한 상황은 그렇지 않지만, 더 넓은 세상엔 괜찮은 것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면, 지금을 버틸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제는, 대부분 실제로 그러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을 가지 않음으로 인해, 그리고 또 수많은 변수들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가, 세상과 다시 교감하며 내가 느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