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꿈을 뺏는 이들

꿈을 뺏어 먹고사는 이들을 생각한다.

by 유희


최근, 나는 나보다 2살 어린 친구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자신의 진정한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청소년기에 자신의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모님께 원망과 분노가 든다고 말했다. 아주 솔직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는 음악인이라는 꿈을 갖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하루하루 알바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벌써 2년 전이 되어간다. 내가 서울에 1년 동안 살며, 매일 알바를 하고 작업실을 오갔던 날들이 말이다. 그 당시 나의 하루하루는 불안과 분노의 연속이었다. 내가 만약, 조금 더 일찍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주변 어른들이 조금 더 내 꿈을 응원해 줬더라면, 등. 쉽게 지울 수 없는 생각의 고리에 둘러싸여, 매일 같은 고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똑같은 고민과 가라앉는 감정에 휩싸여있는 친구가 내 앞에 앉아있었다.


그의 감정의 가장 큰 것은, 분노와 불안.


나는 그것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째서 우리는 똑같은 나이, 스물두 살에, 이렇게 같은 감정에 허덕였을까? (물론 지금의 나도 그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다른 때에는 몰라도, 젊은 나이의 분노나 불안은, ‘내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두 번 다시는 이 젊음이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알기에, 이 젊음을 빼앗겨버린 것만 같은 마음에, 분노나 불안의 마음이 퍼져 ‘원망’으로 번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부모님들은, 어린 시절 ‘꿈’ 따위는 사치였다는 것을. ‘먹고사는’ 문제가 1순위인 사회에서는, ‘꿈’을 꾸는 다소 인간적인 행위는 사치에 가깝다. 그들도 어쩌면 꿈을 먹는 괴물에게 꿈을 빼앗겨버린 불쌍한 어린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에 상처받은 그 어린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그리고 그가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자식들은 영문을 모른다. 유독 아시아에서, 자신의 자식의 꿈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문화가 정말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그것 때문에 힘이 들었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친구들을 많이 본다. 부모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더라도, 자식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다. 다만, 나는 적어도 이 해로운 문화만큼은, 바꾸는 데에 일조를 하고 싶다. 그 수단이 무엇이든 말이다. 꿈을 뺏는 이들이 되어버린 이들은 아마, 하루하루의 생계 때문에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적대자가 아니다. 그들 또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마음속 반짝이던 무언가를 말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되돌릴 수 있을까? 그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아무쪼록, ‘자신답게 살기’를 배워온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답게 살라’는 메시지가 유독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자기다움’이란 뭘까,는 개인 또한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 그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부분을 내 작품 세계에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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