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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18. 2024

코로나 그 시작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

설명절이라 한국을  가야 했다.

매년 설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곤 한다.

일찍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데  늦어버려  갈 때 올 때 모두 경유를 해야 했다.

`조금 더 일찍 서두를걸`한국까지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짧은 거리를 둘러 가려니 살짝 짜증이 난다.

 후회가 밀려들지만 이미 직항 표는 어려워진 상태다.


이제 곧 김해 공항이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던지......

베트남에 공장을 이전하면서 나는 이미 한국에서와는 다른 생활을 감내하고 살고 있었던 듯싶다.

노모에 대한 마음도 사업에 대한  생각도 한국에서와는 다른 마음으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포기해야 하는  것과 타협해야 할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제일 마음에 남는 것이 노모에 대한 마음이지만  내 삶에 타협점을 찾으며 지내왔다.


이른 아침 공항에 내리면 느껴지는 한기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얇은 패딩 옷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든다. 어깨가 움츠러들지만  그 서늘함이 싫지 않다.

겨울이 없는 상실의 도시로부터 빠져나온 게 실감 나는 익숙한 냄새가 묻어오는 바람.

서늘하고 마른바람이 실어오는 냄새에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하는 부산과 마주한다.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내려가는 날카로운 베임을 뒤로하고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뵌 모친은 작년보다 더 늙어 보이 신다.

건강한 모습을 뵈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 항상 죄송할 따름이다.

기분 좋은 만남도 잠시 아침 방송에서 들려오는 장면들은 흉흉하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는 전염병에 대한 소식들은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아무거나 먹는 식문화, 쉬쉬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국 답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모습들이다.

현실 같지 않은 을씨년스러운 화면 자료에 우려가 되긴 해도 저러다 말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왔다.

매년 설날에 치러지는 연례행사는 그해에도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이뤄졌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 해 대학 입학을 앞둔 딸을 위해 센텀 시티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에 들렀다. 해운대에 있는 협력 업체

사무실에서 오전 업무를 마치고 센텀으로 넘어왔다.

오후에 가족들과 만나 처음 들러본 백화점은 길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넓고 복잡했다.

한국 올 때마다 점점 높아지는 건물들과 새로운 풍경 때문에 가끔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해운대의 모습은 예전에 내가 살던 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 이젠 낯설기까지 하다.

내 눈에 어색해진 도시를 바라보면 그 세월만큼 나도 변해버린 듯해 씁쓸한 기분이 든다.

아내와 딸은 쇼핑으로 한껏 상기되어 있다.

발걸음부터가 달라져 보이고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베트남과 사뭇 다른 백화점 분위기.

물건도 사람도 훨씬 많군. 복잡하고 번잡스러운데 얼른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이러다 재채기 한번 나오기 시작하면 힘들어질 텐데......

비염이 심한 난 겨울철 실내 들어갈 때는 매번 조심스럽다.

주머니에 약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곳곳에서 들리는 중국말. 그들은 손에 손에 쇼핑가방을 들고 쇼핑계 큰손(?) 임을 자랑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 달리 보이는 모습, 마스크를 다들 쓰고 있다.

`감기가 들어도 마스크 잘 쓰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10대 아이들이 마스크 쓰고 돌아다닌다고 답답하지 않냐고 핀잔만 늘어놓는 줄 알았는데`


쇼핑 중인 국내인들도 , 중국어를 사용하는 그들도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백화점 안내 방송에선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마스크를 나줘주고 있으니 필요한 분들은 받아가시라는

안내가 흘러나온다.

딸과 아내는 `뭐지? 이상하네.. 우리만 안 쓰고 있어.ㅎㅎ 아 귀찮아. 뭐 별일 있겠어?`

무신경하게 흘려들으며 데스크까지 갈 생각은 않는다.

``그래도 공짜로 준다는데 받아 올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어본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그냥 쇼핑이나 얼른 하고 가요.``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데 뭘 그런 것에 신경 쓰냐는 말투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드문드문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인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지만 애써 무시했다.


2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이제 다시 생업으로 복귀해야 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부모님과의 이별은 짧은 인사만 남기고 만다.

애틋한 그리움은 이미 그 마음이 다해 말라버린 기다림만 남아버렸다.


공항엔 아침부터 줄이 길다.

이 시기 베트남 항공 창구 앞엔 베트남으로 떠나는 한국인들과 베트남 인들로 인산인해다.

우리처럼 음력 설날을 중시하는 문화라 설명절이 되면 베트남은 민족 대이동이 벌어진다.

국제결혼을 한 커플들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부치는 짐에 들고 있는 가방까지 짐들로 산을 이룬다.

아이들은 잠이 덜 깨 보채기도 하고 긴 기다림에 지쳐 칭얼대고 있다.

출국날마다 보이는 낯설지 않은 풍경.

이젠 나도 베트남 사람이 돼가는 모양이다.

처음 볼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그들의 말과 행동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야~~ 오랜만에 아는 말들이 들려오네. 내 고향 같다.ㅎㅎ``

``그러게요. 이젠 여기가 더 낯선거 같아요. 가끔은``

아내도 맞장구를 쳐준다.

그들과 동화돼 살아가는 게 아님에도 이젠 베트남 사람도 그들의 들리지 않는 말도

내 삶의 일부가 돼 버린 느낌이다.


올 때처럼 들어갈 때도 다낭을 경유해 호찌민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서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소 지친 상태에서 경유하려니

 `조금 더 서두를 걸 `

후회가 또 밀려들지만  다낭에서 밥이나 먹으며 보내지 뭐. 아내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다낭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멀지 않아 택시를 잡아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이상하다.

식사 시간이 좀 지나서 일수도 있지만 손님이 없다. 문을 닫은 곳도 있어 헤매다 식사 가능하냐고 물었다.

Are u chinese? 뭐지 왜 이렇게 묻지? 의문이 들지만 아마도 베트남에도 널리 알려진 그 바이러스라는

놈 때문이겠지 싶다.

No.Korean.라고 답해준다.

Yes.Come in.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중국사람 바이러스 때문에 식사 안된다. 한국인은 괜찮다``라며  뭐라 떠들어대는 직원에게   Shut Up을 외쳐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티브이에서 인민들을 향해 많은 주의를 준 모양이라 여기고 만다.

늦은 식사를 하며 바이러스가 어쩌고 중국인이 어쩌고... 얕게 들은 정보로 떠들어댔다.

그래도 차별대우 안 받으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웃을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때까지는.


지난 몇 년간 사스며 메르스등의 전염병이 문제 된 적은 있었지만 국지적이었고 얼마 못 가 다 진정되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좀 지나면 진정되겠지. 근데 중국에서 뭔 일이 일어나는 게 맞긴 한 것 같은데.

별나게 이상한 걸 먹어대니 이상한 바이러스나 퍼뜨리지.

무신경하게 여기며 호찌민으로 돌아왔다.


연일 쏟아지는 관련 뉴스들.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한국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고 매일 책임자가 나와 브리핑을 하는데  감염자뿐 아니라 접촉자를 역추적해 찾아내는 등 점점 확산 일로였다.

감염자와 접촉자가 죄인이 되어가는 듯한 이상한 기류에 세상이 미쳐간다 여겼다.


하노이로 향하던 아시아나 항공기가 착륙을 불허해 회항했다는 사실이 뉴스마다 도배되고 있고

유튜버들은 이때다 싶어 베트남에 대한 악평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게 뭘까.

이런 적은 없었는데 뭔가 다른 게 다가오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갔다.


보이지 않아 더 무섭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일지  짐작이 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약국마다 마스크가 품절되고 소독약도 동이 났다.

정부에서 내려온 공문은 회사차원에서 져야 할 책임을 많이 부여했다.


나는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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