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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an 15. 2024

코로나시기 호찌민에서

확진자 남편이 거친 이야기

2020년은 전 인류에게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웃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간 거대한 변혁의 시기였다.

집에서, 거리에서 모든 이들은 마스크를 생활화해야 했고

손을 열두 번도 더 씻어대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것조차 무서워

비닐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소독약을 들고 다니며 나도 뿌리고 상대도 뿌려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많은 일회용품으로 지구는 몸살을 앓으면서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쏟아내었지만 

그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선택 사항이었다.


우리나라 대구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창궐할 때 베트남에서  아시아나 비행기가 회항한 사건이나

그 외 많은 유튜버들이 떠들어대던 한국을 홀대한다는 비방으로 

한 때 베트남과 한국 간 관계가 엄청난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빗장을 걸어 잠그던 시기에 

공산국가인 베트남에서

진단 키트며 병원 시설 등이 한국 같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베트남은 

중국의 험악한 보도를 보며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닥칠 미래 같아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러한 심중이 타인에 대한 홀대나 배척과 같은 모습으로 비쳐 

많은 소문을 만들어내고 한국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보며 나도 분개하고 기분 나빴지만 

공산당 1당 독재 치하에 살고 있었던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었고 그들의 처분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어질 내용들은 그 속에서 버텨낸 남편의 코로나 발병 초기의  일련의 과정을 얘기한다.

이미 지난 이야기이며 식상한 이야기들이지만 

베트남 한 복판에서 겪은 코로나 현장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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