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난 완벽을 원한다.

내가 추구하는 건 완벽 그 자체보다는 완벽을 위한 노력이다.

by 카를

난 모든 것이 나의 이상대로 이루어지고 실현되기를 갈망한다. 이유야 뻔하지 않겠는가. 어느 누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세상을 원하겠는가. 나 역시 세상과 주변 환경이 나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내가 갈망하는 대로 변화하길 원한다. 난 단지 남들보다 기준점이 많이 높을 뿐이고 그걸 쉽게 체념하지 못할 뿐이다.




불만이 있기에 인류는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불만과 불편감, 그리고 불평을 두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인류가 줄곧 이런 감각을 느껴오지 못했다면 개선책이나 혁명적인 발전도 실현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일일이 현금으로 계산하는 것이 불편하여 카드나 모바일로 결제한다. 우리는 걸어가는 것이 불편해 차를 타고 이동한다. 우리는 집에서만 컴퓨터를 하는 것이 불편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만약 우리가 현금으로 계산하거나 집에서만 전화를 하고 컴퓨터를 하는 현실에 충분히 편리함을 느끼며 만족을 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완벽주의라는 말은 총체적인 성향을 단편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가능하면 최적의 조건을 원하는 사람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 이상에 부합하거나 그 이상의 성취를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기준점이 유독 높은 사람들을 우리는 완벽주의자라고 통일하여 부른다. 나도 같은 성향이기는 하나 사실 나도 완벽주의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완벽하게 추구하는 가치와 내 가치가 완전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완벽한 청결을 추구하여 나에게 이미 어느 정도 청소된 공간도 계속해서 다시 청소하라고 한다면 난 그걸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완벽하게 추구하는 가치를 다른 완벽주의자에게 요구해도 그는 나에게 반감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높은 기준점과 현재에 대한 불만은 미래에 있어 잠정적인 이익이 있을 것이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일종의 개혁의 여지가 차단된다. 내가 위에서부터 말한 불만은 자기 방어라던가 감정의 표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지금 일어난 긍정적인 일을 두고도 '흠... 이런 식으로 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됐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만족을 못한다고?'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래도 노력이나 개선의 면에서 본다면 두 사람 중 전자의 사람이 더 낫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어중간하고 꼴불견인 생각과 행동인가,
아니면 정교하고 치밀한 생각과 행동인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는 마인드는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비롯된다. 즉 완벽하고 싶지만 실력이 안되기에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완벽하고 싶지만 지금의 내 실력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해지고 싶으면 오히려 그 어쭙잖은 실력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그 결과에 대한 불만족감, 남들의 시선이 두렵고 공포스러워서 실행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한다면 잘하는데 주변 환경 때문에 못한다.'라던가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대충 했다.'라는 둥 노력만 한다면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데 장애물 탓만 하며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방어기제로 상쇄시키기만 한다. 정작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그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겠다.'라는 모토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러한 좌우명은 나를 그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게 속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을 추구하는 나의 갈망을 내려놓는 것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동을 전제로 하고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그러도록 하고 있다.


실력이 높고 낮은 지를 판단하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가 강하다. 즉 내가 지금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한다면 난 현재에서는 절대로 만족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현재의 나에게서 개선점은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라는 말, 혹은 그러한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기거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은 그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각을 상쇄시키기 위함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난 굳이 이렇게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 불안과 두려움을 억제하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그 감정에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감정을 스스로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겪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그 상황에 비하면 우리는 충분히 풍족하다. 그런데 그런 극한의 상황에 처한 것마냥 비이상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격해진다면 그것을 당사자가 스스로 만들었다고 밖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완벽함은 행동 자체를 전제로 한다. 실력이 없으면 완벽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지만 공교롭게도 완벽한 결과를 원한다면 추하고 형편없는 실력을 만천하에 공개하여야만 한다. 그건 지금의 내 글들과 그 글들의 논리들도 마찬가지다. 해야 늘고, 해야 완벽해진다.




겁이 많아서 안 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안 하는 것은 지금 와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는 사람들은 겁이 없고 용기가 가득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겁 많고 두려움 가득한 상태에서도 그냥 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두려움을 덜 느낀다면 그건 당신이나 나처럼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해야 하는 부담스럽고 도전적인 일에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사이코패스다. 비정상적인 감정 반응이기 때문이다.


혹시 북적한 번화가에서 10초 동안 눈을 감고 걸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해본 적이 한번 해보길 권한다. 아마 5초도 되지 않아 두려움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사람이나 사물에 부딪힐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자신이 어디까지 와있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함. 그것이 우리의 미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 누구도 앞장서서 갈 수 없는 미래는 마치 어둠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밀림과 같다. 그런 곳을 우리가 나아가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불안과 두려움을 안 느낄 수 있겠는가? 처음 들어가 본다면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허나 어두운 밀림을 초연하게 나아가는 현인은 알고 있다. 그곳에 호랑이가 없다는 사실을.


반대로 호랑이가 있다는 생각에 그는 싸울 무기와 태세를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본인이 판단하기 나름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삶을 살면서 그러한 자신을 위협하는 위기가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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