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꽃기린
2장
굴뚝 아래, 땅 위.
땅에 내려온 고진옹과 허수인.
고진옹은 홍성호의 조끼를 입고 있다.
둘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들고 있다.
함께 해고당했던 동지들이 서 있다.
그들은 고진옹과 허수인에게 열렬한 호응과 박수갈채를 보낸다.
고진옹과 도근행이 뜨겁게 포옹한다.
고진옹 근행아, 고맙다.
고진옹, 아내 이윤미 손을 잡고.
고진옹 당신도 고생 많았어.
이윤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허수인, 마이크를 잡고.
허수인 1년이 넘는 하늘살이를 마치고 동지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격려의 박수 소리.
허수인 굴뚝은 헐벗은 공간이었습니다. 태풍이 보금자리를 날리고, 혹한은 모든 감각을 마비시켰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죽어도 좋다, 죽더라도 이 투쟁은 완수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해고노동자의 고통을 이 세상에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노동자를 무시하는 세상은 적어도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수 소리.
허수인 372일 동안 함께해준, 연대와 노조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통의 시간들은 우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려는 신의 은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홍성호 형님의 희생이 합의에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든 해고노동자는 복직하는 것에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열렬한 박수 소리.
도근행이 꽃기린 화분을 고진옹 앞에 내민다.
도근행 꽃기린이에요. 성호 형님이 고시원에서 키우던 놈이에요.
이윤미 한겨울에도 예쁘게 꽃이 피었네.
도근행 예수님의 가시면류관처럼 가시가 있어서, 꽃말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래요. 1년 내내 꽃을 피우는 기특한 놈이죠.
고진옹, 화분을 받아들고 잠시 쳐다본다.
고진옹 성호형이랑 똑같은 놈일세.
도근행 성호형도 같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순간, 느닷없이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경찰들, 마구잡이로 고진옹과 허수인을 연행해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