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세상이 무서워. 내가 병신같아서 더 무서워.
3장 – 일주일 후.
구치소 면회실.
면회 온 이윤미.
이윤미 앞에 고진옹 앉아 있다.
이윤미 회사에서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50억대로 하겠대. 노조에서 이걸 안 받아들이면 다른 어떤 합의도 없을 거라고 압박하나 봐. 앞으로 농성에 참여하거나 파업하면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통보도 했대. 세상이 온통 미친 거 같아.
고진옹, 큰 한숨.
이윤미 여보.
고진옹, 고개도 들지 않는다. 이윤미 잠시 망설이다가,
이윤미 당신 앞으로 5천 5백만 원 손해배상소송 통보가 날아왔어.
고진옹, 대꾸가 없다.
이윤미 사람들이 휘청거려. 회사에서 회유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노조에서 나가면 소송에서 빼주겠다느니, 사표 쓰면 빼주겠다느니. 이러다 노조가 와해될까 봐 걱정돼.
고진옹 개새끼들! 처음부터 다 거짓말이었어.
이윤미 당신이 뭐라도 메시지를 내야 하지 않을까?
고진옹 (비웃음) 누가 내 메시지를 들어주기라도 한대? 손해배상소송 철회하라고 몸에 기름 붓고 분신자살이라도 할까? 아님, 굴뚝으로 다시 올라가?
이윤미 미시타 옹!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
고진옹 방법이 없어.
이윤미 당신, 왜 이래? 왜 이렇게 뾰족해?
사이.
고진옹 내가 굴뚝에 올라간 게 최후의 선택이었어. 그런데 그 죗값으로 교도소에 가게 됐고 수천만 원 물어내게 생겼는데, 뭘 더 해 보겠어.
이윤미 미안해. 지금 많이 힘들고 예민할 텐데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봐. 그래도 당신이 지부장이니까 사정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고진옹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윤미 힘내! 나도 있고 준호도 있잖아.
고진옹 당신도 준호도 볼 면목이 없어. 가장으로 해준 것도 없고, 고생만 시켰어. 준호 고3인데 남들처럼 뒷바라지도 못 해주고. 좋은 부모 만났으면 좋았을걸.
이윤미 괜찮아. 내가 벌잖아.
고진옹 손해배상청구액이 5천만 원 넘게 나왔다며. 씨발놈들!
이윤미 미시타 옹 이상하다. 씩씩하고 용감하던 로보트 태권브이 어디 갔어? 찌그러져서 깡통 로보트가 된 거야?
고진옹 농 칠 기분 아니야.
이윤미 준호, 대학 안 간대.
고진옹, 이윤미를 똑바로 쳐다본다. 침통하다.
이윤미 일단 취직하고. 나중에 여유 되면 간대. 우리 준호, 철이 빨리 들었어.
고진옹 왜들 그래? 정말 왜들 그래?
이윤미 우리 걱정하지 말라고.
고진옹 차라리 나한테 투정을 부려. 차라리 욕을 해. 다들 착한 척 이해하는 척하지 말고.
이윤미 …….
고진옹 그게 말이 돼? 요즘 세상에 돈 없어서 대학을 안 가는 게 말이 돼?
이윤미 안 가는 게 아니야. 천천히 가는 거지.
고진옹 당신 왜 아닌 척해? 법원에서 날아온 통지서에, 대출기관에서 날아온 독촉장에 가압류한다는 소송까지. 감당 안 되지? 질식할 것 같지? 당신 지금 미쳐버릴 거 같잖아. 아니야?
이윤미 그만해! 당신, 지금 힘들어. 힘들어서 자꾸 시니컬해져.
사이.
고진옹 세상이 무서워. 내가 병신 같아서 더 무서워.
이윤미 당신, 전에 내가 준 신경안정제라도 복용해. 나오는 대로 상담을 받는 게 좋을 거 같아.
이윤미, 고진옹 손등을 문질러주며.
이윤미 당신 무너지면 안 돼.
이때, 들어오는 경찰.
경 찰 중요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급히 면회를 요청하셔서. (이윤미에게) 그만 가주셔야 합니다.
이윤미, 일어난다.
이윤미 갈게. 오늘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자.
이윤미 가려다 돌아서서.
이윤미 노조 사람들 다 떠나도 당신은 거기 있어.
고진옹 …….
이윤미 당신은 상징이잖아.
경찰이 이윤미와 함께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