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8세였을 때, 장수풍뎅이를 키우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게에 들러 장수풍뎅이 애벌레 한 마리를 사 왔다. 한동안 열심히 관찰했다. 과학관에 가면 애벌레를 신기해하면서 잘 만지는 아이가 애벌레가 죽을세라 만지지도 않고 용케 잘 지켜보기만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리저리 꼬물거리며 왔다 갔다 하던 애벌레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번데기가 된 모양이었다. 정말 번데기가 되어 조용한 걸까. 아니면 죽은 걸까. 아이와 함께 숲에 보내주기로 했다. 애벌레가 들어있던 통을 뒤집었다. 아이가 번데기를 찾으려고 검지손가락으로 흙을 한번 뒤집었다. 순간 보였던 번데기가 흙처럼 잘게 바스러졌다. 아이가 뒤로 넘어갔다. 으악. 내가 장수풍뎅이를 죽였어!! 으아으아어어어어엉....
그때 그 기억이 계속 마음에 남았던 차에 당근마켓에서 장수풍뎅이 알을 나눔 한다는 글을 보았다. 운 좋게 네 알을 받아서 가져왔다. 통에 넣어놓고 1년을 키웠다. 애벌레가 꼬물꼬물 흙속을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 아이는 신기한 듯하나 둘 세며 쳐다보았다. 분무기로 축축이 흙을 적셔주는 것도 아이의 몫이었다. 어느 순간 꼬물거리던 애벌레들이 보이지 않더니 한동안 조용했다. 아이는 그 사이 자랐는지 번데기들을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어느 날 풍뎅이 허물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 확인하던 아이는 장수풍뎅이 성충을 발견했다며 근데 뒤집어 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는 저거 못 만진다며 2호와 함께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앉아있으려니 1호가 연필 하나를 들고 와서 홀라당 풍뎅이를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는 또 뒤로 넘어갔다. 으악, 내가 풍뎅이 등에다 기스을 냈어. 으아으아어어어엉....
성충이 된 것을 확인한 우리는 발견한 성충 두 마리를 큰 통으로 집을 옮겨주고 톱밥도 채워놓았다. 연필심 모양으로 왼쪽 등에 기스가 난 풍뎅이는 큰 통이 적응이 안 된 건지 이리저리 쿵쿵 부딪히며 날아다녔다. 어찌나 힘이 센지 날아다니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젤리를 넣어주니 머리를 처박고 잘 먹었다. 자꾸 뒤집어져 못 일어나길래 혹시나 못 일어나서 죽는 일이 생길까 봐 시골에서 나무를 잘라 풍뎅이가 잘 놀만한 예쁜 것들로 아이들이 정성껏 골라 놀이목도 챙겨 넣어주었다. 풍뎅이들은 크고 작은 놀이목들이 생긴 탓인지 날아다니지 않고 조용히 숨바꼭질하며 잘 놀았다.
근데 왜 모두 암컷이야? 난 수컷이 보고 싶은데. 앞으로 길게 뿔이 난 수컷을 보고 싶었던 아이들은 혹시나 나머지 두 마리는 수컷인가 싶어 애벌레 통을 지켜봤다. 하지만 작은 애벌레 통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죽었나 보다 하고 있던 어느 날 2호가 허물이 보인다고 외쳤다. 혹시나 해서 젤리를 넣어주었더니 먹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자고 일어나면 젤리양이 줄어 있었다. 아빠가 큰 통으로 모두의 집을 합쳐주었다. 새로 보인 풍뎅이 한 마리도 암컷이었다. 아우, 알은 못 낳겠다. 모두 암컷이면 어쩌지. 아이들이 아쉬워했다.
온 가족이 외출하고 돌아온 어느 저녁, 다 돌아간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베란다에 가져가 널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는데 방금 내가 빨래를 가득 안고 바닥을 보지도 않고 발을 디디며 걸어온 길에 풍뎅이 두 마리가 뒤집어져 버둥거리고 있었다. 으악!!!!!!!!! 풍뎅이가 탈출했다. 얘들아~~~~ 나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달려온 1호가 또 연필을 풍뎅이 앞으로 내밀었다. 연필을 잡고 올라선 풍뎅이들을 조용히 통 안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도대체 어느 틈을 비집고 빠져나온 거지? 의아했다. 남편은 말했다. 풍뎅이들이 힘이 세서 열고 나온 거라고. 혹시나 밟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쳤다. 그로 며칠 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조용한 집에서 자꾸 찌그르르 찌그르르 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지? 둘러봐도 보이지 않더니, 베란다 쪽 박스 옆을 풍뎅이 두 마리가 붙어서 힘겹게 기어가고 있었다. 코팅된 박스가 미끄러워 걷기가 힘들었나 보다. 아이도 없는데 이를 어째. 혹시나 날아올라 내 목에라도 붙으면 어떡하지. 소름이 돋았다. 주위를 둘러보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효자손을 들고 슬금슬금 풍뎅이들한테 다가갔다. 다행히 풍뎅이들은 날아오르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풍뎅이들을 통에 넣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발견한 나머지 풍뎅이 한 마리. 마지막 발견된 풍뎅이도 암컷이었다. 그리고 병이 들었는지 건강하지 못해 보였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났으면 수컷도 만나보고 알도 낳아보고 새끼 얼굴도 한번 봐야 하는데.. 엄마는 너희들 낳고 키우는 게 너어무 행복하고 좋은데. 풍뎅이도 느껴봐야 하지 않을까? 이제 성충되고 우리랑 한 달 살았으니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동안 수컷 풍뎅이 만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라고 풀어주는 건 어떻게 생각해? 아이들은 수컷이 없어서 아쉽다면서 내 의견에 동의했다. 수컷 풍뎅이를 사 오자고 하면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통을 카트에 담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이 가까운 꼭대기 동으로 올라갔다. 풍뎅이들에게 자유를 주려는 우리 가족의 발걸음은 의기양양했다. 산으로 가까이 가면서 이쪽이 어때? 저쪽이 좋다 하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뒤쪽에서 땡그르르 와장창 소리와 함께 2호의 비명이 들렸다. 혼자 열심히 끌고 오던 2호가 도로 한복판에서 풍뎅이 통을 카트에서 떨어뜨리며 홀랑 엎어버린 것이다. 톱밥, 놀이목, 젤리, 풍뎅이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도로 위에 엎어져 있었다. 당황한 아빠와 1호는 2호에게 주의하지 않았다며 뭐라 뭐라 하고 나는 빨리 담기나 하라며 횡설수설했다. 2호는 풍뎅이들 놀랬겠다며 발을 동동 울상을 하고 서있기만 했다. 모두 우물쭈물하며 풍뎅이가 무서워 손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동안 1호가 재빨리 움직였다. 대충 쓸어 담는 사이 2호는 풍뎅이가 죽을까 봐 잔뜩 걱정했다.
한바탕 난리를 겪고는 더 올라가지 못하고 나무가 많고 꽤 적당해 보이는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잡기로 했다. 통을 들고 가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어떻게 꺼내줄까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 등에 기스가 난 장수풍뎅이가 윙 하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난다 난다. 어? 근데 어디까지 올라가? 우와우와우와 하고 있는 사이 풍뎅이는 높은 소나무 꼭대기를 지나 이름 모를 어느 높은 나무 끝 하늘로 휘잉 날아올랐다. 뭐야. 저거 새인가. 우와우와우와. 원래 풍뎅이가 저렇게 높이 나는 거였어? 혹시나 숲을 벗어나 단지로 들어갈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리고는 어디까지 날아올랐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엄마. 풍뎅이가 여행가 버렸어..."
1호가 말했다. 우리는 기가 막힌 듯 서로 웃으며 얼굴을 보다 나머지 풍뎅이들도 놓아주었다. 1호가 젤리를 나무에 발라주니 풍뎅이들이 기어 올라가 먹고 있었다. "이제 오늘 밤에 풍뎅이들 여기서 파뤼파뤼 젤리 파뤼 하는 거야."라고 말하니 2호가 목소리를 암컷, 수컷으로 짐짓 꾸며내며 말했다. "수컷이 와서 '장수장수우~'하면 암컷이 '오! 장쑤장쑤'하면서 반기겠지. 파티하고 알도 낳고." 신난 암컷들의 제스처까지 상상하며 따라하는 2호의 재롱에 다같이 웃었다. 네 마리 알을 받아 1년간 애벌레, 번데기, 성충까지 너무 잘 키웠다 하니 2호가 아픈 풍뎅이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사람도 병에 걸리면 산으로 가고 거기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거 먹으면서 기적처럼 낫잖아. 나는 자연인이다 보믄 왜 그렇잖아. 풍뎅이도 아마 그렇게 훨씬 더 좋아질 거야. " 내 바람을 말해주었더니 안심하는 듯했다. "여행 간 아이는 날아오를 때 얼마나 자유로웠을까. 그동안 답답해서 힘들었겠다. 놓아주길 정말 잘한 거 같아." 1호가 씨익 웃었다. 비워진 통을 들고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 1호가 말했다.
"엄마, 다음에 또 키우자. 다음엔 수컷으로."
"어.. 어... 그래........(10년 뒤쯤... 너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