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부터 우선 잘하자.
아침부터 푱푱 퍽퍽 소리에 눈을 떴다. 전쟁상황이다. 화살이 이리저리 날리는 요란한 아침.
ㅡ아이.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아랫집 아줌마 아침부터 놀래서 쫓아오겠네.
눈뜨자마자 구시렁대는 나다. 원숭이 궁수 두 마리는 독감에서 온전히 벗어난 건가. 아침부터 전쟁놀이 상황이 심란하지만 몸상태가 회복되었다는 의미니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 이사올 때 떡을 돌리며 "남자아이들이라 많이 시끄러울 거예요. 이해 부탁드려요ㅜㅜ." 했더니 걱정 말라며 외동이지만 남자아이 키워 잘 안다며 본인도 아랫집에서 많이 올라왔었다며 그 당시 아랫집을 욕하면서 나에게 백번 공감해 주었던 아랫집 아줌마. 그 이후로 도저히 못 참겠다며 두어 번 올라오더니 지금은 인사하면 받아주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 아주머니가 올라오면 이번엔 너네가 나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ㅡ아들 쌍둥이시네요. 폭력적인 어머니가 되시겠어요.
산부인과 의사의 말은 마치 신들린 무당의 예언 같았다.
아침부터 약을 안 먹겠다고 다 나았는데 왜 먹냐고 생떼를 부리며 발버둥인 2호에게 화살을 겨눴다. 약만 먹으면 토악질을 해서 두 번씩 타게 만드는 2호가 밉다. 거실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저리 진상이니 더 꼴 보기 싫다. 지금까지 남편을 독감에서 어떻게 지켰는데. 남편이 아파지면 내가 힘들어진다.
ㅡ너 지금 내가 몇 번 말했어. 선생님이 나은 것 같아도 이 약은 끝까지 다 드세요라고 했다고. 너도 같이 들었잖아. 약 먹어야 한다고 곱게 말하면 안 듣고 내가 꼭 이렇게 큰소리 내고 해야 말을 들어? 다섯 센다. 오 사 삼 이 일.
엄마가 그러든말든 신경도 안 쓰던 아니 어디 한번 진짜 쏘나 간을 보다 날아가는 화살과 동시에 약을 들이켠 아이가 깜짝 놀란다.
ㅡ아야. 엄마 진짜 쏘면 어떡해. 엉덩이 맞았잖아. 아. 진짜. 엄마 진짜 쏠 줄 몰랐네.
하하. 쌤통이다라고 생각했다가 순간 따라 할까 봐 걱정이다.
ㅡ아 미안. 그러게 다섯 세기 전에 먹었어야지. 겁만 주려고 바닥에 쏜 건데 진짜 맞을 줄 몰랐네. 아하하.
나는 화살로 아이 엉덩이를 명중시킨 폭력적인 엄마가 되었다. 그러니까 누가 그걸 가지고 놀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물건들은 내가 화가 나면 무기로 바뀐다. 그러니 아이들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 집엔 야구방망이, 죽도, 창, 칼 다양하기도 하다. 그래도 아이가 휘두르는 야구방망이에 내가 맞은 적은 있어도 때린 적은 없으니 이해심이 많은 엄마다.
카톡~
카톡이 왔다. 아이들이 방학 시작했다고 괴로워하는 옆단지 쌍둥이 엄마다.
ㅡ언니 언니네 둥이도 아직 이렇게 놀아요?ㅠㅠ
아들들이 거실에서 한바탕 칼싸움하는 사진이다.
우리 아이들을 본다. 1호는 레고로 만든 헬멧에 팔엔 아머를 끼고 방패를 수리 중이다. 2호는 전쟁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화살을 허리에 찬 폼이 진지하다. 어디에 진지를 둬야 하나 잔뜩 고민이다. 전집을 당근마켓에 내놓으려고 만들어놓은 박스들이 너덜거린다.
ㅡ응. 우리도 화살 가지고 전쟁놀이 중이야. 넷이 만나면 난리 나겠다ㅠㅠ
자신의 아이들이 정상인 건가를 묻기 위해 사진을 보낸 쌍둥이 엄마는 나의 대답으로 안도를 했을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직 남아있는 내 국민학교 통지표 행동발달 사항에는 6년간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말이 있었다.
ㅡ차분하고 조용하며 온화함.
심지어 어떤 친구한테는 그런 말도 들었다. 너 혹시 절에 다녀? 부처님 같은 분위기라서.
내 요것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그랬던 나를 폭력적인 엄마를 만들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같은 긴 훈계를 했다. 아들들의 외출 나간듯한 뇌들이 돌아오라고. 나는 임팩트 있게 훈육을 하는 능력이 없으니, 내 잔소리에 기가 빨려 엄마 잔소리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 주겠다는 취지다. 한번 걸리면 긴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애초에 조심하자 하는 생각을 갖게 해 주자는. 아. 통했다. 애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 하품을 하고 있어 엉? 하면서 내 잔소리는 더더 길어진다.
긴 잔소리를 하다 보니 온갖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다 했다. 누구누구 너네 친구는 학원에서 몇 시간 공부를 하네마네 비교하기, 너네 아빠는 공부를 안 해서 월급이 쥐꼬리 어쩌고 하는 남편 디스, 너네는 아빠 닮아서 대머리가 될 건데 여자들이 극혐 하니 콩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 둥 그래서 머리 빠지기 전에 여자를 꼬셔야 한다는 둥, 착하고 똑똑한 여자 꼬시는 방법은 너네 아빠한테 배우라는 둥, 너네 아빠는 하늘이 내려준 복을 타고 난 사람이니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될 거란 생각을 버리고 너네는 노력해야 한다는 둥..
그리고 오늘, 가위에 눌리며 누군가 또는 어딘가를 향해 주먹을 마구 날리다 새벽 네시반에 잠에서 깼다.
정신이 들자마자 어제일을 떠올리며 바로 반성모드다. 얼마 전에 아이들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엄마 오늘 글쓰기 주제가 불안할 때의 습관인데 엄마가 불안할 때 어떻게 해?"
"엄마는 불안하면 우리한테 소리 질러. 우리 막 혼내."
그래. 그랬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자기들을 혼내는 게 내 마음이 불안해서였다고 다 알면서도 아이들은 "엄마, 또 불안해?"라고 말하지 않고 내 불안의 비를 다 맞고 있었던 거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잘못이 없었다. 아이들은 엄마는 왜 맨날 계란밥이랑 미역국만 해주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엄마는 왜 그렇냐고 아빠는 왜 그렇냐고 불평하지 않고 다른 엄마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를 안아주고 좋아해 주었다. 이제 와서 내 말들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어떡하지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어른이 되기가 쉽지 않다. 나이만 먹었지 내가 뭘 했다고 어른인가 싶다. 몸만 나이 든 어른처럼 살아가지만 나 스스로 너무 잘 느끼지 않나. '지금의 나'라는 껍데기만큼 나는 아직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아직 어린 나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물론, 경험한 것도 많고, 들은 이야기도 많다. 그렇다 보니 그것들에 대해선 해줄 이야기가 많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한 내 생각까지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나 스스로가 느꼈던 것들을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나. 나와 다르게 살아갈 다른 인격체와 삶을 가진 아이들인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을 그것이 정답인 듯 강요하다가 그게 틀리면 그땐 어떡할 건데.
내가 맞다고 오만하지 말자. 내 생각이 다른 이들에겐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다들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답을 각자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많은 길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