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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강머리 앤줌마 Jun 03. 2022

꿈을 따라 길을 나서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

가만히 있어도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차갑게 식은 칼바람은 마른 나무가지에 붙어 억척스레 살아내려는 나뭇잎들의 몸부림도 못본척 외면하며 사납고 독살스러운 반응으로 마지막 남은 이파리 마져도 기어히 떨어뜨려 버린다.

나무는 또 벌거벗은 몸둥아리를 시큰둥하게 지나치는 햇살을 붙잡고 부드럽게 녹여내는 수고를 불평하지 않아야 여린 가지끝에 물이 오르고 가지의 속살은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품어주며 공기보다 더 가벼운 꽃잎을 밀어낸다.

여름에 피는 꽃은 또 어떤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뙤약볕의 목마름을 위하여 뜨거운 열기에 휘청거리는 가지속 진액의 한방울까지도 아낌없이 바쳐야 하며, 퍼붓는 장대비와 휘몰아치는 광풍에 온몸이 꺽이는 수모를 창조주의 섭리로 버티어 내어야만 그를 찾아온 이들에게 아름다운 자태에 향기를 더한 행복을 선물한다. 


아침부터 하늘이 낮게 내려 앉았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봄을 만나기 위하여 부산한데 봄을 데리고 올 우주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이럴때 꼭 탈이난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인생이 아름다움을 알면서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탈을 낸다.

이런날엔 만사를 내려놓고 쉬어도 되는 나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만들어서 육체와 마음의 불편을 생산하는 실수는 젊은 날들의 열정속에 묻어두어도 좋을 때이다.

나는 얼른 머리를 흔들며 머리속에서 유혹하는 현장을 털어낸다.


10여년전에 나는 지금의 터전을 마련했다.

오래전부터 교회옆으로 이사하기를 원했던지라 마침 기회가 주어졌다.

교회가 있는 곳은 구도심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나의 삶은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생활에 편리한 부분들도 많아서 운전을 못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가고자 하는 모든 목적지가 걸어서 가능한 곳이라서 더욱 좋았다.

건물을 지은 후로 보수하지 않아서 엉망이었지만 집을 리모델링한 경험이 두어번 있었기에 덜컥 달려 들었다.

건물을 전체적으로 보수하는 일은 녹녹하지 않았지만 남편이 출근을 하고나면 나는 작업하는 인부들을 상대하고 재료를 고르고 뒷정리까지 부지런히 해내었다.

나의 수고가 더해진 집이어서 더 고맙고 감사했다.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며 친정아버지께서 가신 뒤여서 친정엄마와 함께 행복을 만들며 살아가던 어느날이었다.

건물전체의 리모델링이 마무리 되고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온몸이 뻐근한 몸살기운으로 밤을 뒤척인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데 입 안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사하기전 나는 미리 치과에서 모든 치아를 점검한 상태였기에 아무 생각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치과를 찾아갔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다닌 단골치과였다. "잇몸이 녹아내려서 이를 다 뽑고.... 임플란트도 안되겠.... 틀니를.... 틀니밖에...."

믿을수가 없어서 여러곳을 돌아 다녀보았지만 한결같은 답이 돌아왔다.

치아만 문제가 있는것이 아니고 몸을 이루고 있는 뼈들도 반란을 일으켜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다 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병명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166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44kg 결혼전 몸무게보다 더 가벼워져 버렸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손바닥에 담는다.

햇살의 무게가 무겁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봄을 따라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무겁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가 언제였을까....'

'낮으막한 산 언덕에 자리잡은 이 곳에 언제부터 사람들은  모였을까?'

'처음 이곳에 왔을때의 나의 마음은....궁금하다'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매일 표정없는 얼굴들을 마주하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사라진 여기에서 나는 얼마다 더 버텨야할까....'

창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에 내게는 그날이 그날이고 숲도 햇살도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도 무겁기만하다.

저멀리 보이는 요양원의 간판도 무겁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포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누군가에게 아니 가족에게 짐이 되는 삶도 싫었지만 이제 겨우 몸도 마음도 평안을 얻은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내 주위에는 유난히 아픈 사람이 많다.

젊은 날의 사고로 20년 세월을 누워만 계시다가 가신 외삼촌과 아들과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뇌사상태로 10년을 누워있는 지인의 동생도 있다. 친정엄마도 40대초반에 자궁을 덜어내고 평생을 아파하셨고 시어머니도 내내 아프셨다.

지금도 주위를 돌아보면 친구의 부모님이 두분다 요양원에서 10년을 넘는 세월을 보내고 계시는 분이 많으시고 예기치 않는 사고로 일상을 포기한 친구도 있다.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최소한의 존엄성만 보장 받는 공간에서 시간에 대한 감각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타고난 허약한 신체를 위하여 젊어서부터 열심히 나를 지키는 몸놀림을 하고 있던 터라서 충격이 컸다.

이대로 살다가는 병원에서 시간을 죽이며 살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해 왔다.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면 건강하게 지켜주신 것들을 감사하고 마지막 그날이 가장 아름답기를 소망하며 그날이 슬픔이 아니라 축제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하였기에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나의 몫이니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모든것들을 포기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필요했기에 내 몸에 대하여서도 공부를 했다.

몸을 리모델링하기로 마음을 먹고 평생 처음으로 몸에다 고급진 투자를 결정하고서 발이 편한 비싼 운동화와 몸의 저항 능력을 키워주는 약도 먹으면서 자세를 교정하는 운동과 재활치료도 받았다.

물론 이와 잇몸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고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도구를 구입하여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몸을 위하여 시간의 십일조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딸램과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삶에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어떤 현장이든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새롭게 시작할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우리에게도 기적처럼 찾아올 것임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너무나 평범한 엄마같은 사람에게도 부지런히 수고하며 살아온 삶의 몫으로 인생의 평화를 누리는 은총이 선물로  주어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몫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이 말하는 금수저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하는 것이 부족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멀리 바라보는 용기와 도전하는 의지가 있다면 꿈을 꾼 현장에 반드시 서게 될 것임을 삶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4회이상 6000보 이상 걷고 아침저녁으로 보건체조와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물1500cc이상 멸치 들깨 토마토....는 매일 먹는다.


고난과 실패로 상처받은 경험이 없는 삶에도 간절함이 있을까?

삶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기도 하고 피와 땀으로 수고한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현장을 바라보며 가슴이 녹아내리는 아픔을 경험하였기에 내게 허락된 시간을 나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아내고 싶다.

건강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내가 가진 소재들은 연약했으나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요하기에 오늘도 나는 익어가고

내 삶에 찾아준 고난과 실패란 친구들 덕분에 더 단단해졌고 더 너그러워졌으며 이웃들의 아픔과 외로움에도 쉽게 전염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이러한 삶의 위기가 내 삶을 지켜주었고 또 아름답게 빚어왔음을 알기에 부끄럽지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감히 자랑해 본다.




#나의에세이 #앤의에세이 #글쓰기

#삶이아름다운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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