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기억
종례시간이었다. 내 청소 구역은 청소도구함 주변이었다. 청소도구함 주변은 특별히 더러울 게 없었기 때문에 금방 끝내고 집에 갈 생각에 신나 한참 쓸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가, 아니면 청소도구함의 뒷편에 빗자루를 넣었던가. 분명 아까까지는 그 자리에 없었던 혹은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웬 종이 인형 같은 게 빗자루에 걸렸다. 아이보리색에 얕은 광이 나는 얇은 종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이었는데, 빗자루에 끌려 내 앞에 가까이 오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빨간색 볼펜자국이었다. 아이보리색 종이 위에 잔뜩 박히다 못해 군데군데 구멍이 난 빨간색 볼펜자국.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나를 두고 저주하며 나름대로 만든 부두인형이었다.
그때 당시 나는 왕따였다. 초등학교 1학년에 서울에서 전학을 와 처음 듣는 사투리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못했고 심지어 선생님의 말조차 이해하지 못해 숙제를 제대로 해가기까지 반년이 넘게 걸렸다. 얌전하고 새침한 서울말씨는 아이들에게 '밥맛없다'고 느껴졌고 외동인 덕에 사랑 받고 자라 '내가 싫으면 말고' 하고 돌아서던 내 성미는 나의 밥맛없음에 불씨를 당겼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싫으면 말고 뒤에는 다른 애랑 놀면 되는 거지,가 붙는 나였다. 맞잖아. 네가 내가 싫은데 굳이 내가 너랑 놀 필요는 없잖아. 유아기를 지나면서 아주 좁은 서울 동네 골목(응답하라 1998 쌍문동 같은 골목이었다.)에서 앞집 뒷집 모두 알고 지내며 자란 나한테 낯가림이란 거는 없었다. 놀이터에 가 무리가 있으면 얼쩡이다 같이 놀자고 말하면 되었고, 또래 아이가 혼자 있으면 말을 걸면 됐다. 나를 싫어하는 애가 있다고 해서 기가 죽는 편은 아니었으니 학교 안 밖, 학원으로 친구를 사겼다.
그렇게 반에서는 데면데면 해도 바깥에서는 같이 놀고, 하교는 따로 해도 집에서 만나 노는 친구들도 생겼을 무렵 한 아이가 내 인생에 나타났다. 햇볕에 탈색된 주황색 염색이 부스스하게 빛나는 머리를 엄마의 손길로 꽉 묶인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는, 까무잡잡하고 눈썹이 아주 두껍고 까맣던 여자아이. 20년이 훌쩍 지나는 지금도 그 아이의 첫만남이 이토록 선명한 건 그 날 이후로 그 아이는 내 인생의 약 10년을 망가트리고 괴롭히고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망쳐놓았는가. 드라마 더글로리가 핫했을 때 극중 문동은이 당하는 고문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아이들이 어디까지 잔혹해지는지를 그리고 현실은 어떻게 다른지를 논하며 자와자와할 때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 20년.
학교폭력이라는, 이제는 지극히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회적 문제가, 현실이 드라마화 되어
사회의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기까지 딱 20년이 걸리는구나.
초등학교 4학년. 나를 싫어하고 괴롭히던 그 어린 11살 친구들이 공책의 종이를 찢어 만든 부두인형의 오른 다리에 찍힌 빨간색 볼펜 자국처럼 내가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목의 뼈와 성장판이 완전히 골절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 한 학기가 채 지나기 전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발목의 뼈가 조금씩 더 휘어가면서 그사이 약해진 발목으로 입은 숱한 부상에 관절이 다 닳아 거의 없어졌다.
20년. 누군가에게는 아주 어릴 적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가 눈 앞에 놓이기까지의 시간이자 나에게는 그때의 시간이 내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은 긴 내 생의 시간이다.
앞으로 내가 지나온 이 20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시 한 번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정리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