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규칙성, 삶의 목적

by 철학적 생각들

우리는 무한을 인지할 수 없고 어떤 것이 무한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무한은 불규칙성을 내재하고 불규칙성은 무한을 내재한다.


어떤 것이 랜덤이라는 속성을 갖는다면, 즉, 랜덤 제네레이터라면 그것은 곧 그 존재가 무한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떤 것도 랜덤 제네레이터가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대상과 관념은 불규칙성의 반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규칙성의 정의는 그것을 유한하게 서술가능한 것이 된다. 유한하게 서술할 수 있는 대상은 규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규칙성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의지가 작용한 것이라고도 가정할 수 있다. 규칙성은 의도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어떠한 주체로부터 유래하는가? 그 주체가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무한 속에 신의 존재가 현현하는 게 아닌, 유한, 즉 규칙성 속에 신의 존재가 현현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무한을 세지 못하고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진화론적 한계 때문이라면 어떨까?

인간보다 훨씬 더 진화한 고등 지성이 있고 그들이 무한을 인간이 유한을 인식하듯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사물에 무한이 내재하고 있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불규칙성이 내재할 수 있고 랜덤 제네레이터가 실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사물에 규칙성이 반드시 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규칙성을 발현시키는 의도를 반드시 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가 가정되지 않는다면 의도의 주체를 가정할 필요도 없다. 신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유무는 우리의 무한의 불가지성이 사물의 실재하는 본질인지 진화론적 한계 때문인지에 달려있다. 다른 말로 하면 뇌의 한계 때문에 무한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신은 존재하지 않아도 되며, 모든 지성이 본유적으로 무한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신은 존재하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이유나 목적은 무엇일까?

행복하려고 사는 것일까? 행복의 정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첫째, 삶의 목적이 있는 것인지 자체가 의문이다.

사람은 예를 들어 부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부를 달성한 사람은 그 후에는 다른 것을 추구할 수 있다. 혹은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고 그냥 생을 연장시키는 경우도 많다. 사람마다 삶의 양태가 너무 다르다. 목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목적이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목적을 갖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삶을 지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째,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 해도 행복은 궁극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사람마다 동물마다 행복을 느끼는 메커니즘이 다르다.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지양한다고 하지만 마조히스트는 고통을 추구한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이는 돈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명예를 추구한다. 어떤 이는 쾌락, 에로스를 추구하고 어떤 이는 고통, 타나토스를 추구한다. 대중이 없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를 검토했을 때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삶의 목적의 문제, 즉 윤리학의 문제에 있어 뚜렷한 규칙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은 물리적으로 경계 지어진 조건 안에서 랜덤 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닐까? 즉, 삶의 목적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임의적으로,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가 무한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뇌의 문제가 아닐 때) 앞서 살펴본 봐와 같이, 세계에는 그러니까 실제계에는 불규칙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 관념은 규칙성을 바탕으로 성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규칙성은 신의 존재를 가정하게 한다.

그렇다면 삶의 목적의 문제, 윤리학의 문제에 있어서도 신의 의도가 작용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는 우리의 삶이 임의적으로 작동한다는 느낌과 배치된다.

즉,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이유가 일견 아무 의미도 형성하지 못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신적 의지가 바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의 논증에서 살피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무한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뇌의 문제일 때, 즉, 진화론적 한계의 문제일 때의 경우다. 이 경우 인간보다 더 고등한 지성에게 신의 존재는 필요 없다. 더 고등한 지성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은 인간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우리의 삶의 목적은 불규칙성이라는 혼란으로 빠지게 된다. 윤리학은 토대를 몽땅 빼앗기게 된다. 우리는 나침반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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