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비하 끝판왕

매일 벌서는 아이

by 바람


혼나는 아이, 벌서는 아이는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어린 시절의 경험이고 기억들이다. 사회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세상에 나온 그 순간부터 훈육받는다. 다만 그 훈육의 정도와 방법의 차이로 인해서 우리는 성인이 되어도 벌서는 아이를 매일 체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우리는 보통 심리학에서 부모님의 내사화로 설명한다. 엄하고 무서웠던 부모님의 꾸중과 잔소리가 내 안으로 어느새 단단하게 자리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한다. 정도가 심하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며 우리에게 죄책감이나 수치감을 형성케 한다. 이는 곧 자기 비하로 이어지며 마음의 병을 앓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벌서게 만드는 그 목소리를 잘 구분하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


지난 주말 자격증 시험을 보러 어느 중학교에 갔다. 정문 초입에 붙여놓은 포스터에서 이름과 배치된 교실 넘버를 확인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학부생 이후 시험을 쳤던 기억이 언제 적인가 싶다. 다만 어느새 로봇처럼 경직된 몸을 느끼면서 '아, 본능적으로 시험 혹은 평가와 관련된 것들을 내가 많이 무서워하고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아마 시험결과에 따른 빈곤했던 일들을 몸은 생생히 기억하나 보다. 배정된 교실에 들어서니 수험생 배치표로 보이는 A4가 교탁 위에 붙어있었다. 그 종이에 여러 수험생 이름들이 적혀있었고 다만 내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뭔 일인가 싶어서 재차 확인해 봐도 없다. '어라, 뭔 일이래..' 그렇게 앞에서 몇 분을 헤매고 있으니 문득 미리 와서 앉아있는 수험생들이 점점 신경이 쓰였다. 결국 안전부절 분주한 내 모습을 수상하거나 바보같이 여길까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끼며 교실을 나왔다. 수고스럽지만 다시 배치표가 붙은 정문으로 돌아와 내 이름과 교실 넘버를 확인했으나 분명 아까 그곳이 맞았다. 애써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호기롭게 그 교실로 다시 들아가 이름을 찾지만 역시나 내 이름은 없었다. 시야가 좁아진 탓일까, 결국 어찌어찌 행정실에 물어 교탁에 적힌 A4가 아닌 칠판에 붙어있는 A4를 확인해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교탁에 붙은 배치도는 이 교실에서 수업받는 진짜 학생들의 것이었다. 내가 심하게 오해를 했다. 이름을 찾은 안도감과 함께 시작부터 소란을 피운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였다. 왠지 모를 불쾌감도 함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어느 중년 여성분이 시험감독으로 들어오셨다. 핸드폰 '전원 off'를 재차 강조하시면서 여러 가지 수험생 행동 강령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간다. '하지 마라, 주의해라, 안된다.'무엇인가 강압적인 분위기에 위축되면서 반감이 들었고 또 긴장감을 느낀다. 문득 컴퓨터 사인펜으로 꼭 작성해야 한다는 말이 귀에 꽂힌다. 마음이 철렁 '공지된 부분은 흑색 사인펜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네임펜을 준비했는데 아뿔싸..', 다시 화끈거림을 무릅쓰고 컴퓨터용 사인펜을 빌리기 위해 감독관을 향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여분이 있는지 그에게 부탁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14명 중 7명이 결시를 해서 사인펜의 여유가 있었고 주최 측이 얘기한 그 흑색 사인펜을 챙길 수 있었다. 안전하게 시험을 칠 수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나는 어떤 불쾌감을 다시 한번 경험한다.


마음을 이리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친절하지 않은 주최 측에도 화가 났지만 정작 칠칠치 못한 내 행동에 대해서 더 화가 난 모양이다. 아마도 매사에 완벽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내사화로 완벽주의에 기반하여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불쾌한 감정을 마구 생산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있으니 내 안에 수많은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왜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니?, 꼼꼼하게 시험을 준비하지 못했니?', '그러니 필기도구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시험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니 긴장도 심해지고!', '긴장을 하니 네 이름 석자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칠푼이가 된 것 아니냐!!!!!!!!!!!!!!'라고 거침없이 나를 몰아세운다.


시험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볕은 적당히 따듯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버스 정류장은 한산하고 조용했다. 긴장이 풀리고 온몸에 혈기가 도는 어떤 열감을 느끼며 재킷을 벗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미세미세 어플의 '양호'를 의미하는 딱 그 푸른색이었다. 오감으로 들어오는 기분 좋은 자극 덕분이었을까? 집중하지 않으면 몰랐을 해방감이 저 아래부터 서서히 아지랑이마냥 간질간질하게 피어 오름을 느낀다. 그 즐거움을 음미하면서 오늘의 소요를 생각했다. 그리고 반작용의 물리적 법칙처럼 날을 세웠던 목소리는 썰물처럼 빠지고 움츠려있던 생각들이 밀물처럼 흘러들었다. 나에게 힘을 주는 목소리.


'나를 위하는 진정한 마음', 사실 완벽했으면 좋겠지만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하고 살아간다. 가만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이는 수험 표를, 어떤 이는 신분증을 두고 왔다. 어떤 이는 알레르기 비염으로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교실에 모인 우리 모두가 이렇게 완벽하지 못했지만 결국 나를 포함한 전원이 시험을 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만 유독 칠칠치 못하다고 스스로에게 비난을 쏟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들이미는 완벽이라는 기준은 너무 비합리적이다. 사실 컴퓨터 사인펜을 잘 챙겨 왔다거나, 차분히 칠판을 훑어보았다면 조금 덜 수고로웠을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던 것이다. 다만 혼나는 어린아이는 그 사실을 잘 몰랐을 뿐.


손 들고 벌서는 어린이의 손을 맞잡아 내린다. 울적한 꼬마에게 괜찮다며 토닥이는, 그 꼬마보다 한 뼘이나 키가 큰 어엿한 소년이 이제는 내 안에 잘 자라고 있다. 벌서는 아이를 다치지 않게 매번 지켜줄 수 있도록, 그가 성숙한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서툴지만 혼내는 목소리를 성공적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가채점 결과 나는 시험에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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