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자와할랄 네루 [세계사 편력 2]
서두가 이렇게 길어진 이유는 이 산업 혁명의 중요성을 네가 머릿속에 새겨 두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층부의 중요성을 네가 머릿속에 새겨 두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층부의 왕과 지배자들을 갈아치우는 단순한 정치 혁명이 아니라 모든 사회 계급들, 그리고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혁명이었다. 기계와 산업화의 승리는 기계를 지배하는 계급들의 승리를 의미했다. 오래 전에 너에게 얘기했듯이 생산 수단을 관리하는 계급은 동시에 지배하는 계급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토지가 유일한 주요 생산 수단이었다. 따라서 토지를 소유한 계급, 즉 영주가 지배자였다. 봉건 시대는 이와 같은 상태였다. 그러나 토지 이외의 다른 부가 나타나자 토지 소유 계급은 새로운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계급에게 권력을 나눠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거대한 기계가 등장하자 자연히 이것을 장악하는 계급이 앞에 나서서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새로운 산업 조직은 특히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약육강식은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공장 제도는 이것을 한층 더 쉽게 해 주었다. 법적으로는 노예가 없었다 해도 사실상 굶주리고 있는 노동자는 공장의 임금 노예로서 옛날의 노예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법은 모두 고용주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 종교조차 고용주에게 유리해서 가난한 자들에게 이 세상의 비참함이 저 세상에서 보상받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지배 계급은 빈민은 사회를 위해 필요한 존재이고, 그러므로 싼 품삯을 지불하면서도 그것은 선행일 수 밖에 없다는 아주 편한 철학을 만들어 냈다. 만약 높은 임금이 지급되면 가난한 자들은 항략에 빠져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것은 그들의 물질적인 이해와 딱 맞아떨어지는, 자본가들에게는 편리하고 도움이 되는 사고 방식이었다.
기존 사회의 모든 구조가 뒤집히고 새로운 계급들이 전면에 나서서 정치 권력을 장악한다. 직인 계급은 공장의 임금 노동자 계급이 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 상황은 종교와 도덕상의 사고 방식까지도 변하게 한다. 인간의 신념은 자신의 이해 관계나 계급 감정에 따르며, 그들이 그럴 만한 권력이 있을 때에는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들을 만든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미덕으로 치장되고, 법은 인류의 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명제로 포장된다.
탄압과 테러리즘의 잔혹성은 곧 정부가 느끼는 공포심을 잘 드러내는 척도다. 혁명 정부건 반혁명 정부건, 외국 정부건 자국 정부건, 그것이 존재를 위협당할 때면 반드시 테러리즘으로 기운다. 반동 정부는 소수 특권층을 대신해서 대중에게 테러를 휘두르고, 혁명 정부는 대중을 대신해서 소수 특권층에 항거해 행동한다. 혁명 정부의 방법은 더욱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때때로 잔혹하며 성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책략이나 기만이 개재될 여지는 없다. 반동 정부는 허위로 가장된 공기 속에서 산다. 반동성이 폭로되면 지위를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유를 구호로 내세우지만 그 자유란 자기 좋을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자유이며, 또 정의를 구호로 내세우지만 그 정의란 남을 희생시켜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을 보장하는 사회 질서의 영구화를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즐겨 구호로 삼는 것은 '법과 질서(law and order)' 이라는 말인데, 이 상투적인 문구를 가면으로 뒤집어쓰고 제멋대로 발포하고, 살인하고, 투옥하고, 언론을 탄압하고, 온갖 부정과 불법 수단을 동원한다.
위대하고 비범한 인간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나폴레옹이 그 나름의 위대함과 비상함을 겸비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거의 자연력과 같은 원시성을 갖고 있었다. 훌륭한 착상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상의 가치나 이타적인 동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기기 위해 애썼으며, 사람들에게 영광과 재산을 주어 감동시키려 애썼다. 때문에 그의 영광과 권력이 일단 쇠퇴하자, 그가 직접 출세시킨 사람들이 계승할 만한 아무런 이상도 없었으며, 마침내는 많은 사람들이 비열하게 배신했다.
그들(농민)은 미신에 빠지고 경제적 원인을 바로 보지 못하며, 변화도 희망도 없는 생활을 하면서 무정한 운명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한다. 그런데 공장 노동자들은 기계를 다루면서 일한다. 그리고 환경은 사람이 만든다. 그들은 계절이나 강우에 관계 없이 제품을 만든다. 그들은 부를 만들어 내지만 그 부가 대부분 남의 손에 들어가고 자기들은 변함없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실천 속에서 어느 정도 경제 법칙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초자연적 원인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농민처럼 미신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빈곤을 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와 사회 제도, 특히 자기 노동의 태반을 제 주머니에 챙기는 공장 소유주인 자본가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들은 계급 의식에 눈뜨고 사회에는 여러 계급이 있으며, 상류 계급이 자기 계급을 먹이로 삼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자각이 그들을 불만과 반항으로 이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투덜대면서 불평한다. 또한 때때로 들고일어나도 맹목적이며 사상적 기반도 든든하지 못하고 힘도 약하므로 정부에 금방 진압당한다. 이제 정부는 대공장과 그 부속물을 지배하는 새로운 중간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굶주림을 언제까지 눌러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중략) 노동자는 서서히 힘을 얻게 되어 노동 조합은 강력한 조직이 된다. 각종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은 권력의 지위에 있는 착취 계급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획득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 조합은 공동 보조를 취하게 되고, 일국의 노동자는 하나의 조직된 집단이 된다. 그리고 각국의 노동자들끼리 단결하는 것이 다음 과제가 된다. 그들 또한 자기들과 이해를 같이하며, 공통된 하나의 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슬로건이 내걸리고 노동자의 국제 조직이 결성된다.
멸망해 가는 질서는 멸망의 징후를 제대로 보지 못 하며, 이미 자기 임무와 기능이 다했음을 자각하지 못하며,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는 사물의 진행에 밀려 불명예스럽게 퇴장당하기 전에 깨끗하게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생각할 줄 모른다. 낡은 질서는 역사의 교훈을 좀처럼 배우지 못하며, 누군가 말하듯이 세상이 자기를 '역사의 쓰레기통(dustbin of history)' 에 내버리고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네가 민족주의자로서 사물의 일면만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공평하게 사실을 살펴보면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국민이 다른 국민을, 한 인민이 다른 인민을, 그리고 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마찰, 불만, 반항이 있으며, 착취당하는 국민, 인민, 계급이 착취자를 추방하려는 사건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어떤 자에 대한 다른 자의 착취는 그 속에 제국주의를 잉태한 것으로서 자본주의라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의 근본 요소다.
역사는 유쾌한 것은 못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랑할 만큼 크게 진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참으로 불유쾌한 자기 본위적인 동물인 것이다. 그래도 아마 인간의 이기주의와 집안 싸움과 비인간성의 길고 음울하고 참혹한 이야기를 관통하면서 진보의 자취를 보여 주는 한 줄기 은빛 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소 낙관주의자여서 무슨 일이든 희망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렇지만 이 낙관주의 때문에 우리 주위에 있는 어두운 곳과 엉뚱하고 분별없는 낙관주의의 위험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까지의, 또 현재 존재하는 서계는 결코 낙관주의에 만족할 만한 근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상주의자나 또는 자기 신념에 따라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시련의 장소가 된다.
유럽 여러 나라는 좁은 대륙에 빈틈없이 들어차 있어서 인구는 매우 조밀하고, 서로 한치도 양보할 여지가 없어서 분쟁이 끊일 사이가 없었다. 또한 공업 문화의 출현과 함께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물자는 국내에서 다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이렇게 늘어나는 인구를 위해서는 식량이, 공장을 위해서는 원료가, 또 제품을 위해서는 시장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성급한 경제적 요구가 그들을 먼 곳에 있는 다른 여러 나라로 진출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닫게 했다.
사회혁명은 단순히 사회의 표면에서만 사태의 변화가 생기는 다른 혁명과는 크게 다르다. 그것은 동시에 정치 혁명도 초래하지만 사회의 구조를 바꿔 버린다는 점에서 정치 혁명 이상의 것이다.
아무리 큰 야심을 가슴에 품은 인간이라도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한 개인이나 단체의 힘만으로 사회 혁명을 달성할 수는 없다. 대중이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그들이 그렇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의식적으로 마음가짐을 다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말하려 하는 의미는 사회, 경제적 상태 및 생활이 그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 되어 이런 종류의 변화 없이는 구제될 길도 없고, 조정할 수단도 없는 듯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인간 또는 계급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가지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타인 또는 다른 계급으로 하여금 현존의 질서야말로 가능한 한에서는 최선의 것이라는 점을 믿게 하는 일이다. 이것을 인민의 머릿속에 주입시키기 위해 종교가 이용된다. 교육도 같은 내용을 가르치도록 꾸몆ㄴ다. 그 결과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인간이 그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라서 그것을 변경하려고는 생각지도 않게 된다. 실제로 그 제도 탓에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까지 그 제도가 유지됨으로써 매를 맞고 발길로 차이는 등의 고초를 겪으며, 어떤 사람들이 한껏 사치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한편에서 굶주림에 우는 것도 그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다윈의 이론은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해 주었고, 또한 사람들은 인류의 완성 상태가 어떤 것이든 그 목표를 향해 자랑스럽게 행진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런 종류의 진보 개념이 전혀 새로운 것이었음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과거에는 유럽에도 아시아에도, 또 고대 어느 문명 속에도 이와 같은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되기 이전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이상적인 시대를 동경했다. (중략) 그러고 보면 인류의 진보라는 개념은 전혀 근대적인 의식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과거의 역사에 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이 개념을 믿도록 유도한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을 경감시키고 숱한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했다. 과학 덕분에 세계, 특히 여러 공업국의 인구는 격증했다. 동시에 과학은 가장 철저한 파괴 방법도 발달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의 죄는 아니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지배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어리석게도 이따금 그것을 남용해 과학의 선물을 전혀 쓸데없는 것으로까지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것을 과학적 방법으로 다루어 논리적인 혼합물을 모두 도외시하고 경제 속에 작용하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려고 했다. 아마 너도 알고 있겠지만, 경제학이란 국민 또는 나라 전체의 수입과 지출, 즉 그들이 생산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의 운용 및 그들의 상호 관계와 다른 나라나 다른 국민과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이들 모든 매우 복잡한 작용이 어떤 일정한 자연 법칙에 따라 행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또한 이 법칙이 저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완전한 자유가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앞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자유 방임주의 정책의 기원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가 인간 또는 국민에게 깊은 영향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에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시도한 것은, 분명히 그 때까지 세상 만사를 낡은 신학적 견지에서 보던 것을 지양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영국의 사업가들은 새로운 산업의 지도자였다. 그들은 고도의 민주주의 원칙과 인민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인민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는 것이 장사를 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것만은 깨달았다. 이것이 노동자의 생활 조건을 향상시키고 그들에게 다소나마 자유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환상을 심어 주어 그들을 더욱 작업에 열중하도록 하는 이점을 주었다. 보통 교육 또한 산업상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필요 조건이었다. 사업가와 실업가는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인민에게 이러한 사상을 심어 주는 데 점잖게 동의했다. 그리하여 19세기 후반에는 영국과 서유럽의 대중 사이에 이들을 위한 교육이 급속히 보급되었다.
역사의 어떤 한 시대의 생산 방법은 인민 성장의 일정한 단계와 상응한다. 이 생산 노동을 계속하는 동안에, 또 그 결과로서 사람들은 생산 방법에 규정되고, 생산 방법에 상응하는 어떤 일정한 관계(예컨대 물물 교환, 매매, 거래 등과 같은)에 들어간다. 이 관계가 사회 전체의 경제적 구조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 경제적 토대 위에 법률, 정치, 사회 관습, 여러 관념 그리고 그 밖에 모든 것이 구축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생산 방법에 따라 경제적 구조도 변하며, 잇따라 사람들의 관념과 법률과 정치 등도 변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또 역사를 계급 투쟁으 기록으로 보았다. "모든 인간 사회의 역사는 과거에도 또 현재에도 계급 투쟁의 역사다." 생산 수단을 지배하는 계급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들은 다른 계급의 노동을 착취해서 거기에서 이익을 얻는다.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다 차지하는 거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그 중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을 얻을 뿐이며, 그 밖의 부분, 즉 잉여 부분은 착취하는 계급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국가와 정부는 생산을 지배하는 계급에 지배되며, 따라서 국가의 제1의 목적은 이 지배 계급을 보호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하나의 전체로서 지배 계급의 업무를 운영하는 집행 위원회다."라고 마르크스는 말했다. 법률은 이 목적을 위해 제정된다. 그리고 교육과 종교를 이용해서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이 계급의 우월성이 정의와 자연의 이치에 합당한 것임을 인민으로 하여금 믿게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착취되는 여러 계급이 사태의 진상에 눈뜨고 불만을 품게 되지 않도록 정부와 법률의 계급성을 은폐하는 모든 종류의 시도가 행해진다. 마침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이 체제에 도전하거나 하면 그는 사회의 적으로 지목되며 예로부터 관습의 파괴자로서 국가에게 압살당한다.
자, 이제 나는 영국인의 시인인 앨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에게서 몇 줄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편지를 끝내고자 한다.
낡은 것은 변해 새 질서에 길을 양보한다.
그리하여 신은 변화가 무궁 무진해 스스로를 이룩한다.
신은, 비록 좋은 제도라도 결국은
세계를 타락시키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우리는 여러 시대의 여러 가지 제국주의를 차례로 훑어보아 왔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이기면 그것만으로는 승자는 피정복국과 피정복 국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토지와 국민을 한꺼번에 병합했다. 다시 말하면 피정복 국민은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차차 이것이 또 하나의 다른 제국주의 형식으로 바뀌어 토지만이 병합되고 인민은 노예가 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과세와 그 밖의 착취 방법을 통해 그들로부터 합법적으로 돈을 빼앗는 편이 더 용이하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런 형식을 지닌 제국의 시대도 이미 지나, 더 발전되고 더 완전한 방법으로 바뀌려 하고 있다. 가장 새로운 종류의 제국은 토지조차도 차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나라의 재화나 재화를 낳는 여러 요인을 차지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방법으로 그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톡톡히 착취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나라의 통치와 치안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실효면으로 보면 그 나라와 인민은 모두 지배를 받고 아주 쉽게 장악되어 버린다.
불행한 개인이나 압박받고 해방을 찾아 싸우는 국가, 이 모두는 불만을 품고 현재를 즐기는 길을 갖지 못했을 경우 모두 과거로 눈을 돌려 거기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한다. 그들은 과거를 과장하고 위대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현재가 암울할 때에는 과거가 구원과 감화를 제공하는 피난처가 된다. 그리고 또한 과거의 비운은 가슴에 맺혀서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과거의 환상만 좇는 일은 한 민족으로서는 결코 건강한 태도는 아니다. 건전한 국민, 건전한 나라는 현재에 행동하며 미래를 바라본다. 그러나 자유를 갖지 못한 개인이나 국가는 건강을 유지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를 돌이켜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 속에 묻혀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색은 바로 끊임없이 증대되는 탐욕에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획득하고 장악하며, 또다시 새로운 것을 획득하려 한다. 개인도 그렇게 했고, 또 민족도 그렇게 했다. 이 체제 아래 발달한 사회는 따라서 타산적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그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끝없이 많이 생산하고, 그렇게 하여 생산된 잉여의 재부를 다시 그 이상의 공장과 철도와 다른 유사한 기업에 투입해 소유주의 주머니를 살찌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수많은 것들이 희생되었다. 실질적으로 산업의 재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거기서 나오는 이익을 조금밖에 분배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식민지와 종속된 여러 나라 또한 자본주의 산업과 그것을 소유하는 여러 민족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고 착취당해야 했다.
한편 자본주의 산업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을 향한 길을 열어 주었는데, 그것들은 새로운 산업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 노동자의 조직과 노동 조합과 국제 노동자 조직(인터내셔널)도 이것들과 함께 발전했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이어지며, 예로부터 동양 여러 나라에 뿌리를 내려 온 여러 경제적 조건에 대한 서양 자본주의 산업의 충격은 그 나라들에게 참혹한 재해를 가져온다. 이윽고 이러한 동양 여러 나라에서조차 자본주의는 서서히 태동하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거기서는 민족주의가 발달해 서양의 제국주의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민족주의 사상이 성장함에 따라 '좋건 나쁘건 조국은 조국' 이라는 관념이 발달해, 국가는 개인의 경우라면 비도덕적인 나쁜 행위라고 생각될 일을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이처럼 개인의 도덕과 국가의 도덕 사이의 기묘한 모순이 더욱 심해져서 개인의 악덕이 바로 국가의 미덕이 되었다. 이기주의와 탐욕과 오만과 야비함은 개인의 경우에는 용서할 수 없는 나쁜 것으로 생각되지만, 국가라는 집단의 경우에는 그것들이 애국주의와 조국애라는 그럴 듯한 의상을 입고 찬양되고 장려되었다. 민족이라는 큰 집단의 차원에서는 살인도 살육도 찬탄할 만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기, 즉 총포, 군함, 탄약, 그 밖의 온갖 종류의 전쟁 물자를 제조하는 개인 회사가 많은 이익을 얻어 살찐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나라가 그들에게 더 많은 무기를 사게 하기 위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풍문을 퍼뜨리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군수 산업체는 많은 재부와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 등의 내각 각료와 관리들은 그 주주였기 때문에 군수 산업의 번창으로 이익을 얻는 위치였다. 군수 산업체의 번영은 전쟁에 관한 풍문 그리고 전쟁과 함께 온다. 그러므로 이것은 많은 정부의 각료와 고관이 재정적으로 전쟁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는 놀라운 상황임이 명백했다! 이러한 회사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 여러 나라의 전쟁 비용 지출을 촉진하려고 꾀했다. 그들은 여론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신문을 발행하고 자주 정부의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사람들이 흥분할 만한 풍문을 보도했다. 어느 정도는 이 무기 산업이 1914년으로 전쟁을 앞당겼던 것이다.
옛날에 군대는 일정한 수의 직업 군인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고 그들은 영구적인 상비군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은 그것에 큰 변화를 주었다. 혁명으로 외국의 공격을 받게 되자 숱한 일반 시민이 소집되어 훈련을 받았다. 그 때부터 유럽에서는 한정된 수의 직업적인 지원병 군대가 징병 군대 - 국내의 적격한 남자 모두가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군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모든 남성 적격자들의 보편 일률적인 군대 복무 제도는 프랑스 혁명의 소산이었다.
그리하여 1916년 말에는 두 나라(영국과 프랑스)의 신용 거래는 모두가 바닥이 났다. 그러자 미국에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중요한 정치가들로 구성된 영국의 사절단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은 돈을 꾸어 주기로 약속했고, 그 뒤로 연합국측의 전쟁은 미국 돈으로 충당되었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연합국의 부채는 놀라운 수치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돈을 빌려 준 미국의 대은행가나 대자본가는 날이 갈수록 연합국의 승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일 연합국이 패전한다면 미국에서 꾸어 준 막대한 돈은 어떻게 되겠느냐? 미국 은행가들의 마음이 차차 불안해지면서 미국이 연합국 측에 참전하도록 촉구하는 압력이 날로 증가해 결국 미국도 참전한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선전을 포고하기 전에 이미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1917년 3월 15일, 제1차 러시아 혁명의 결과 차르가 퇴위하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이제 분명히 독일에 대해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일이 동부 전선에서 모든 염려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했다. 독일은 동부의 정면에 파견한 군대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서부 전선으로 이동시켜 프랑스군과 영국군에 대항하도록 했다. 국면은 갑자기 독일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만일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6~7주 전부터 그것을 탐지하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정세가 달라졌을까. 아마 독일은 잠수함 작전을 변경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미국도 여전히 중립을 지켰을 것이다. 러시아가 탈락하고 미국이 중립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독일이 영국 및 프랑스군을 궤멸시키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의 서부 전선 세력은 강화되고, 독일 잠수함에 의한 연합국과 중립국의 해운에서의 손해는 막대했던 것이다.
자유는 습관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오랫동안 그것을 박탈당한 채로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잊게 되기가 쉽다. 이런 무지한 러시아의 농민과 노동자는 이 습관을 실제로 경험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고난의 나날에 러시아를 지도한 정신은 이 빈약한 인간적 소재를 강력하고 조직된 민족으로 만들어 자신의 사명에 대한 신념을 각성시키고 자신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콜차크나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패배한 것은 볼셰비키 지도자의 재능과 결단 때문일 뿐 아니라 러시아 농민이 그들의 재등장을 거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농민들에게 있어 그들은 새로 얻은 토지와 그 밖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 온 구질서의 대표자로 여겨졌으므로, 농민은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킬 결심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