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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Nov 09. 2017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36 로랑 베그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바에 힘을 실어주는 정보, 상황, 사람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으려는 관심은 쏟는다. 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으려는 관심은 금세 약해지거나 아예 사라지기 쉽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높게 보는 정보에는 유독 관심을 두고 우리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개인적 한계를 강조하는 정보는 슬쩍 간과한다.


   그저 타인의 시선이 도덕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꺼림칙할지도 모른다. 그 시선에서 벗어나자마자 여러분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햇볕에 눈 녹듯 하라져버린다고 생각하기 싫을지도 모른다. 사실, 몰래 위반할 수도 있는 규칙을 알아서 지킬 때도 많지 않은가? 도덕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제재나 처벌을 의식하지 않고도 무엇을 하지 말라거나 어떤 명령에 따른다는 규칙을 잘 적용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결과는 남의 것을 가로채는 일탈행위에 합리적 이유가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훔치고, 슬쩍하고, 위반하는 행위는 들킬 위험이 적으면 확실히 더 많이 발생한다. 처벌 강도가 높아져도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많지만, 틀통 나서 처벌받을 확률이 얼마나 높은 가는 확실히 범죄 예방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미리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 다른 상황에서라면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사람일수록 통제가 없으면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벤담의 말처럼 "끊임없이 감시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는 악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 악을 저지르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없어진다."



   몽테뉴 Montaigne는 인간은 '피상적이고 인위적인' 것을 탐하지만 동물은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행복만을 추구하므로 도덕적으로 인간보다 낫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세금 신고일 한 달 전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세금을 허위 신고할 경우 받게 되는 처벌을 강조하거나 시민으로서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도덕성을 자극받은 집단의 세금신고액은 평균적으로 다소 늘어났지만, 처벌을 강조하는 전화를 받은 집단은 아무 전화도 받지 못한 집단과 세금신고액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사회집단과의 심리적 유대는 구체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보다 중요하다. 그러한 유대는 법을 존중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기꺼이 도움을 주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정직함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꾸물대는 앞 차가 그저 그런 자동차라면 마구 경적을 울리지만 그 차가 높은 지위를 나타내는 고급 브랜드 차라면 경적 울리기를 자제한다.


   가벼운 협박을 받고 지시를 따른 아이들은 엄중한 협박을 받고 지시를 따른 아이들에 비해 스스로를 좀 더 정직하게 여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감안하건대, 행위 동기를 전가하는 기제는 도덕적 행동방식을 유지시키는 결정적 요소다. 행동의 외적 동기가 만들어진 그때부터 그 행동은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만큼 안정적으로 습득되기가 어렵다. 아이들에 대한 규정도 이와 비슷하게 자기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동기 부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데시는 독립적으로 실시된 130종의 연구를 종합해 아주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사탕과자에서 소액의 돈에 이르기까지 온갖 물질적 보상은 진정한 동기 부여를 망친다고 말이다. 도덕적 행동을 포함해 일부 행동방식을 고양하기 위해 보상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행동 그 자체에 느끼는 매력과 즐거움을 떨어뜨린다.


   처벌이 유용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처벌의 효과를 일반화하기는 매우 어렵다. 처벌은 즉각적으로, 불가피하게 이루어질수록 효과가 좋으며, 사회적으로 예측 가능한 방식이어야만 효과가 있다. 또한 처벌은 사회규범들이 최소한 기본적인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야만 정당화된다. 프랑스에 과속감시레이더가 대량 도입된 후 교통사고가 획기적으로 감소했다. 그 이유는 일단 프랑스인들이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취지에 동의하고 있었고, 속도제한 구간에서 위반이 있을 대마다 바로바로 정확하게 처벌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형벌 자체가 전반적으로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사형제도는 어떨까? 흉악한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을까? 여러 국가의 살인 범죄율을 사형제 폐지 전과 후로 나누어 비교하고 미국에서 사형제도가 남아 있는 주와 사형제도가 폐지된 주의 살인범죄율도 비교한 결과, 사형제도는 살인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도덕적 행동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구체적 보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구체적 보상에 대한 기대에 크게 좌우된다는 생각은 자뭇 의심스럽다. 반면에 위반의 사회적, 관계적 결과는 확실히 인간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긍정적인 관계를 추구하고 소외를 두려워한다는 근본적 특징이 있기 때문에 도덕규범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처벌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합의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개인이 자신이 어느 법을 어기면 어떠어떠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예측 때문에 위반을 자제하거나 반대로 감행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가를 강조하는 부모의 훈육 방식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련된 도덕규범을 아동이 내면화하게끔 이끌기에 적합하다. 이러한 훈육방식은 감정이입 과정을 북돋아준다. 게다가 규범을 존중하거나 여러 가지 활동을 수행하게 하는 원동력은 구체적 보상에 대한 기대보다는 주로 성취 그 자체에서 온다. 만약 처벌이 집단에 대한 소속을 강화한다면 도덕적 교화 과정에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아니라면 처벌의 효과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일 것이다.



   의식적인 분석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의식적인 정서적 정보들이 저절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접근(좋다) 혹은 회피(싫다)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그 후, 정보들은 좀 더 완만한 추론 과정에 따라 재배치된다. 우리는 이때에 비로소 논증을 검토하고, 기댈 만한 증거를 찾고, 논리적 관계를 수립하는 '추론 단계'에 이른다. 이 단계가 언어적인 설득력을 발휘하기는 하지만 최초의 감정적 평가만큼 결정적이지는 않다고 볼 만한 증거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정서적 정보가 뇌에 먼저 도달한다는 것이다.

추론이 판단의 키잡이가 아니라는 두 번째 증거는 개인이 제시하는 이유들이 대개 진정한 행위의 동기와 무관한 귀납적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전기톱 소리)


   뇌량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백색 물질로, 이 뇌량 덕분에 좌뇌와 우뇌는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수술로 뇌량이 손상된 환자들, 소위 '분리 뇌' 환자들은 왼쪽 눈의 시야에 들어온 사물을 언어로 지칭하지 못했다. 하지만 똑같은 사물을 오른쪽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거침없이 그 사물의 명칭을 말할 수 있었다. 가자니가의 흥미로운 실험은 인간이 자신의 반응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포장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이미지(왼쪽에는 눈 쌓인 집 한 채, 오른쪽에는 닭발)를 보여주었다. 참가자는 이 화면을 보고 여러 장의 카드 중에서 자신이 본 이미지와 가장 연관되는 카드를 골라야 했다. 이를테면 눈을 치울 수 있는 삽 그림이 있는 카드와 닭 그림이 있는 카드가 정답이 되겠다. 분리 뇌 환자들은 화면의 왼쪽, 즉 눈 쌓인 집의 이미지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눈 치우는 삽 카드를 선택한 환자들, 즉 자기가 보지 못한 쪽의 답을 맞힌 환자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느냐고 물어보면 자기들도 정학한 이유를 잘 모르면서 '닭똥을 치우려면 삽이 필요하잖아요." 같은 대답을 내놓곤 했다.


   아름다운 얼굴이 주는 즐거움은 일상에서도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를 도와줄 때에도 우리의 이타적 행동은 상대의 매력에 휘둘린다. 매력적인 사람이 도움을 얻기 쉬운 이유는 우리가 매력적인 사람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통계자료는 사람들의 분석적 태도를 유도하기 때문에 개별적 효과에 결정적인 '감정적 작용'을 약화한다.


   공정한 세상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개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세상이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실험 상황에서 피해자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특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특권이기도 하다. '말하는 인간'은 거짓말하는 인간'이다.


   마크 스나이더 Mark Snyder가 이끄는 미네소타 대학 연구 팀은 절묘한 방법으로 위선에 대해 연구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TV 앞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두 대의 TV (A와 B라 하자.) 사이에는 달랑 병풍 한 장밖에 없었고, 참가자들은 A를 보고 있는 장애인과 B를 보고 있는 정상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장애인을 멀리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보기 위해 A, B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틀어보기도 하고 똑같은 영화를 동시에 틀어보기도 했다. A, B에서 서로 다른 영화가 나올 때에는 B 쪽에 훨씬 더 많은 참가자들이 앉았다. 장애인을 기피해서가 아니라 그쪽 영화가 더 재미있어 보여서 갔다는 구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대의 TV가 똑같은 영화를 보여줄 때에는 장애인 기피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사무엘 올리너와 펄 올리너느 2차 대전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구했던 219명의 독일인들에 대해 조사했다. 여기서 종교적 경건은 딱히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아동을 돕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종교의 유무는 봉사정신과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실험들은 모두 참가자들에게 과거의 선행 혹은 실험 상황 안에서 자신의 선행을 깨닫게끔 유도했다. 어쩌면 자신의 도덕성을 인가하는 데에는 이런 실제 행동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급하고 그들이 뭔가 도덕적 행동을 했다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올 때보다 고해성사를 하러 갈 때 기꺼이(17퍼센트 대 40퍼센트) 적선에 응한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고 사죄를 구하러 가는 길에 선행을 베풀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우리가 성자, 성녀가 아니라고 인정하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착하다고, 나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악의 평범성'은 중요한 관점의 전복을 뜻한다. 이 개념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평범한 수백만 인구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렌트가 생각한 악의 평범성은 "대규모로 자행되는 범죄 현상으로서 행위 주체의 특정한 악의, 어떤 병, 이데올로기적 신념을 설명될 수 없다. 행위가 아무리 흉측하지라도 그 행위 주체는 괴물 같지도, 악마 같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한 나머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에 휘말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단순한 명령의 하수인이 악의 집행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밀그램의 관찰을 홀로코스트에 적용한다면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지 않은 사람들도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복종은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기 이전에 이데올로기의 주술과 준거 집단의 영향력에 대한 복종이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유대인 학살의 궁극적 원인은 될 수 없다고 해도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어쨌든 이 학살을 연구한 두 역사학자는 표적집단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실추시키는 작업, 고도의 중앙집권화, 거의 관료제에 가까운 폭력의 조직화가 홀로코스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두 가지 관찰은 성격의 특정한 면들이 권위에 쉽게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절하고 순리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 사회에 나무랄 데 없이 편입되어 있는 사람일수록 밀그램 모형과 가까운 상황 안에서 불복종을 꺼려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특징이 공격성, 항정신성 약물 남용, 위험한 성적 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좋은 가장의 자질, 수혈이나 봉사에 적극적인 태도, 높은 학업 수준과 야심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카고 대학의 에비 로셋의 연구는 우리가 화나는 일을 설명해야 할 때에 그 일을 우발적 사건으로 여기기보다는 어떤 사람에게 원인을 돌리기 쉽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황적 원인보다 행위자의 의도를 더 따진다. 왜 그럴까?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개인의 의지보다 행위를 둘러싼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지적으로 더 수고스럽기 때문이다. (중략) 따라서 화가 나는 일을 설명할 때에 누군가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사유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타인이 보는 내 모습이 어떨지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악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 바쁘지만, 피해자는 상대를 악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자신은 책임을 모면할 근거를 찾기 바쁘다.


   자기조절 능력은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수면을 취하거나 포도당을 섭취함으로써 회복된다. (중략) 실제로 한 연구에서 자기조절 활동 이후에 타인을 도와주는 행동이 감소하는 현상은 포도당 음료를 마시지 않은 참가자들에게서만 나타났다. (중략) 이 때문에 자기조절 연습이 근육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잉렇듯 자제력은 쓸수록 발달하는 능력이다.


   성실한 인격은 건강에 이로운 행동들과도 관계가 있어서 이러한 심리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평균수명이 다소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성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부단한 명령을 내리는 권위에 잘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책에서 우리가 타인과 강력하게 연결되는 데 감정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그러한 체계에 힘입어 살아간다. 인간의 근본적 사회성은 상호의존성을 낳고, 그래서 우리는 저 사람을 가까이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정하기 위해 매 순간 타인을 평가한다.


   규범의 전달에 협력할수록 규범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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