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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1

플루언트

#69 조승연 [플루언트]

by 컹리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영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수많은 사람이 영어의 'Why'를 알게 되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니체가 말했듯이, 인생의 'Why'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How'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일본에 답습시키고, 다시 일본이 한국에 전파한 영어 교육의 폐단 중 하나가 '올바른 발음'에 대한 집착이다. 여기에도 물론 정치적인 이유가 담겨 있다. 18세기의 사회 계급이나 19~20세기부터 국가가 신분과 권력의 주요 지표가 된 것처럼, 20세기 중반에 세계의 돈과 권력이 미국으로 집중되면서 다민족 국가인 미국이 생산하는 미디어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인종'이 신분의 주요 지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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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동안 한 민족이 갈고 닦으며 써온 언어는 깊은 감정 소통이 가능하고 형용사와 부사가 풍부하며 운율과 성어와 유머가 발달한다. 물론 한국어도 그중 하나다. 서로의 습성과 감정코드를 잘 아는 사람끼리는 "오늘 기분이 좀 거시기 혀~"라든지, "파랗다기보다는 푸리끼리하지" 같은 표현이 담고 있는 감정까지도 별 문제없이 잘 통한다.
하지만 영어처럼 몇 개의 문화와 관습이 서로 다른 민족이 한곳에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최소 소통만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는 감정의 깊이보다는 얼마나 적은 단어와 단순한 문법으로 실용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우리 회사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오늘은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중략) 우리나라에서 주어라고 부르는 것을 영문법학자들은 '토픽topic'이라고 한다. 그 문장이 무엇에 대해서 언급할 것인지를 세팅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주어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로 1번과 2번 문장을 "This company does not smoke"라거나 "Today does not smoke"로 직역하면 이상한 문장이 된다. 이유는 영어의 주어 개념은 한국어의 주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영문법학자들은 영어를 비롯한 서양 언어의 주어를 '에이전시agency'라는 다른 용어로 설명한다. 에이전시는 '그 동사를 행하는 자'를 뜻한다. 즉 영어 문장에서 주어는 반드시 담배를 피우는 주체여야 하고 담배를 피우는 주체는 실제로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올바르다.

We do not smke in our company.
I am not smoking today.
I do not smoke.
한번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번 프로젝트 진행하래요. 위에서 결재가 떨어졌어요'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하면 될까?"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이 문장에서는 프로젝트가 주제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굳이 주어 자리에 놓으면 수동태라는 한국인의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 문장을 써야 한다.

The project has been approved.

하지만 수동태를 어려워하는 것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미국인도 이 문형을 즐겨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 학교에서도 글쓰기 연습을 할 때 웬만하면 쓰지 말라고 한다. 나도 영어가 미숙할 때 수동태 남발로 상당히 자주 감점을 받았다. 아마 미국 직장인이라면 이 문장을 이렇게 영역할 것이다.

Upstairs said go ahead.

회사의 임원실은 대체로 높은 층에 있다. 동사를 간단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upstairs를 주어로 설정해 버린 것이다. 무조건 '내가 말하자' 하는 바를 문장 앞에 넣어야 하는 강박때문에, 한국인은 잘못된 주어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소리 하나하나가 고립되어 있어서 하나씩 떼었다 붙이면서 새로운 표현을 할 수 있는 중국어를 언어학자는 '고립적 형태소isolating morphology'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영어는 음절을 떼었다 붙였다 해서 단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의미와 역할이 바뀌면 모양이 살짝 휘는 식이다. 예를 들어서 mouse는 복수형이 되면 ou가 i로 휘어져 mice로 변한다. 우리말에서 '노래 부르다'라는 동사나 '노래'라는 명사의 형태소 모양이 변하지 않지만, 영어에서 sing(노래 부르다)이라는 단어를 노래song로 바꾸려면 i라는 모음을 o로 살짝 '휘어야'한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길고 복잡한 문장에 화려한 수식과 운율과 음률을 집어넣어서 말할 수 있다면 영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위트의 영혼은 짦음이다(Brevity is the soul of wit)"라고 말한 것처럼 자기 말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한 문장으로 표현해도 소통이 가능해야 언어를 마스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어 공부의 시작이자 끝은 단어를 철사처럼 휘어서 쓸 줄 아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한국어와 너무 달라서 익숙해지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익혀 나아가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 지금까지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큰 걸림돌 5가지를 분석해 보았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를 하자면, 첫째, 한국인과 미국인은 생각의 순서가 반대다. 미국인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한국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으로 생각한다. 둘째, 한국어에 비해서 영어는 빌트인 된 뉘앙스 숫자가 너무나 적어서 단어를 꼬아 모자라는 표현을 보충한다. 셋째, 한국어 단어는 직관적이고 영어 단어는 추상적이다. 넷째, 영어는 주어의 선택이 제한적이고 동사가 방향을 결정한다. 다섯째, 영어 단어는 같은 단어라 해도 그 모양이 여러 가지다.
He spoke powerfully. (그는 아주 강력하게 발언했다)
She walked beautifully. (그녀의 걷는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그녀의 걷는 모습은 마치 우주의 허공 자체를 밟고 걷는 듯했다'같이 복잡한 문장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She walked ethereally.

대부분의 한국인은 주어+동사의 구조를 완벽하게 익히는 과정을 생략하고 다음 단계로 건너뛴다. 하지만 주어+동사 문장에 익숙해지는 것은 절대로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명사 우선 사고구조를 동사 우선 구조로 바꾸어야만 다른 영어의 문법 원리들이 주르르 따라 온다. 마치 처음에는 초점이 잘 안 맞던 카메라가 초점이 딱 맞아서 환하게 보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영어는 분석어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나는 것은 머리가 문장 요소를 분석하는 것, 즉 떼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이런 복잡한 문장을 접하면 문장을 분해해서 순식간에 머릿 속에 정리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문장을 보고 '얼추 무슨 뜻인지 알았다' 하며 넘어가면 더 이상 독해나 영작이 늘지 않는다. 양파 껍지을 하나씩 벗겨내듯 문장의 입체성을 3차원적으로 분해하는 안목과 사고 패턴을 기르는 것이 독해와 영작의 핵심 노하우다. 이것을 잘 익혀두면 영어 원서 읽는 속도가 열배, 백배, 천배 빨라지는 것을 금세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책 읽는 속도가 사람이 말하는 속도와 가 ㅌ아지면 영어를 듣는 귀가 뚫릴 것이다.
결국 고도화라는 것은 지식을 감각에 연결하는 것이다. 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지식은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아는 것이 몸으로 내려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이 진짜 지식이다.
우리는 한국어의 어떤 단어를 보면 그것이 한자어인지 순우리말인지 금세 구분할 수 있다. '진로'는 한자어, '참이슬'은 순우리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앞에서 말했듯 한자어와 순우리말은 새 단어를 만드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한자는 음절을 레고처럼 붙였다 떼었다 해서 단어를 만들고 순우리말은 풀로 발라서 누르는 방법으로 단어를 만든다. 이처럼 두 언어는 분명히 단어 생성 규칙이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한자어뿐만 아니라 순우리말로도 계속 별 어려움 없이 그때그때 적절한 단어를 만들어 쓴다.
그런데 영어는 거대한 잡종 언어다. 우리말이 한자어와 한국 고유어 두 언어의 결합이라면 영어는 수많은 언어의 결합체다. 예를 들면 켈트어, 앵글로-색슨어, 바이킹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 잡다한 언어가 뒤섞여 있다. 우리가 한자어와 고유어 단어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쓰듯 영어도 각 단어의 출신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쓴다. 우리가 한자어는 한자어 생성법에 맞추어 '제1차 전국체전' 같은 문구를 만들어 쓸 줄 알듯, 영미인도 본능적으로 라틴어 단어는 라틴어에, 프랑스 단어는 프랑스어의 형태학에 맞추어 단어를 만들 줄 안다. 다만 한국어보다 훨씬 많은 언어가 섞여서 복잡해 보일 뿐이다. 내게 익숙한 사고방식, 복식, 예절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섭고 불편할 수 있지만, 미지의 것들은 동시에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소리, 새로운 냄새 맛, 나와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본능 때문이다. 언어 공부는 그 본능에 몸을 맡기는 것일 뿐이다.
두 개의 문화 사이에 기마병처럼 걸터앉아 있는 언어학자들은 글로벌 세계를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선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영어 공부를 통해 더 이상 절대적인 가치관이 존재할 수 없는 새로운 21세기에 필요한 유연한 철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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