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EBS 자본주의 제작팀, 정지은, 고희정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하다못해 옷을 하나 구입할 때도 판매자가 옆에서 어떤 말을 해주든 본인 스스로가 유행에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지, 나한테 어울리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인지, 바느질은 꼼꼼하게 되어 있는지 살핀다. 하지만 금융상품에 가입할때는 온전히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의 말에만 의존해 선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벌의 옷값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을 맡기면서 상품의 수익률이나 위험성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판매자의 유혹에 넘어가 펀드를 가입하는 건 고객의 자유지만 수익을 내기는커녕 원금까지 다 날려도 판매자나 회사가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주식을 하는 이유는 돈을 투자해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여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돈을 투자해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은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는 주식과 달리 돈으로 돈을 벌진 않는다. 가게를 차리기 위해 돈을 투자하는 과정도 있지만 정작 돈을 벌어들이는 건 가게를 운영하는 능력과 노동력이다. 같은 돈을 투자했을 경우, 자기 가게를 열어 돈을 번 사람은 주식투자로 돈을 번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주식으로 돈을 번 사례가 우리의 귀를 훨씬 더 솔깃하게 만든다. 주식투자를 하는 95%가 손해를 보고 있으며 수익을 내는 투자자는 5%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게 현실인데도 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주택담보대출)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저소득층 사람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답시고 사람들이 매우 싼 금리에 부담 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집을 샀으며, 자연스럽게 주택 가격은 상승했다. 주택 가격이 계속 상승하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했다. 가치가 높은 주택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기지 대출을 더 많이 받아 더 크고 비싼 집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자산이 많다는 생각에 소비를 늘렸고 저축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주택가치가 상승해 순자산이 매년 늘어났기 때문에 저축의 필요성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2007년부터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시장에는 몹시 많은 주택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헐값에 집을 팔아 자신들이 살지도 못하는 집의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집은 집대로 잃고 빚은 빚대로 남은 것이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자 은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 대부분의 대출 자산이 부동산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대출 자산의 담보물이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은행 역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택 가격의 하락이 미친 악역향은 그뿐이 아니었다.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비까지 줄어들자 경제위기로 이어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는 금융위기로 번져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금융위기에 빠뜨리는 상황까지 확산돼버렸다.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큰불로 번진 것과 같았다.
과도한 주택담보 대출이 위기를 가져왔다.
"미국인들은 주택을 목마타기(piggyback)로 이용했어요. 주택의 가치가 상승하면 모기지를 더 받아서 지분을 빼냈어요. 너무 많이 빌렸어요. 일자리를 잃고 주택가치가 하락하자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거죠. 게다가 월가의 회사들은 모기지를 사들이고 증권화해서 채권(bond)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도움이 됐어요. 주택 소유주들에게 자본을 모아주었으니까요. 하지만 대출 기준(lending standard)에 부주의해졌습니다. '자택 소유는 좋은 것이니 자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돕자'는 거였죠. 거기에 거품이 있었습니다. 부실한 모기지 대출이 너무 많았습니다. 부실한 모기지 대출이 증권으로 밀려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증권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실한 걸로 판명됐죠"
-리처드 실라Richard Sylla 미국 뉴욕대학교 금육 사학과 교수
부동산과 금융이 결합하면서 위기는 시작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결국 부동산과 금융이 결합되면서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칼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말을 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상품 중에서 상품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그게 뭐냐면 노동, 화폐, 토지다. 이 세 가지는 인간이 상품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데 잘못 만들어서 이것이 큰 재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걸 악마의 맷돌이라 불렀습니다. 악마의 맷돌이 계속 돌아간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칼 폴라니가 말한 상품화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토지(부동산)와 화폐(금융)에서 문제가 터진 겁니다."
-이정우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소비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 댄 애리얼리 듀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이에 대해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턴트인 마틴 린다스트롬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소비자로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매일 조종당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약하다는 뜻이에요.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연약합니다.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면 항상 주의를 하죠. 그게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이미 부를 벌어들여서 소비하는 힘을 생각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소비는 단지 필요한 물품을 적절한 가격에 구입하는 행동 이상의 것이다. 또한 기업은 물건을 파는 대신 이미지나 서비스 같은 것을 팔며 사람들에게 '소비의 수준'이 '당신의 수준'을 결정짓는다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치 인간이 만든 기계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공상과학 영화의 세상처럼 우리 스스로가 사물들에게 예속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우리가 사물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란 그 소비의 현재가치를 고려하고 이 소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1958년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쉽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때 모리나가 제과에서 '이날 하루라도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자'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초콜릿을 선물하면서'라는 문구를 끼워 넣었다. 당시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 전략을 지속적으로 이어간 결과 1970년대 들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리나가 제과에선 자사의 비인기 상품인 마시멜로를 팔기 위해 '2월 14일에 초콜릿을 받은 사람은 3월 14일에 마시멜로 보답하라'는 전략적인 광고를 냈다. 화이트데이의 화이트는 마시멜로가 흰색인 것에서 비롯되었다.
소유보다 획득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 '쇼핑 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소유에 대한 자부심보다 획득하는 행위를 통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죠.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문화 속에서 열심히 일한 데 대한 보상은 종종 소비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경제적인 힘을 어떻게 우리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인류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느냐는 것입니다."
-파코 언더힐 paco underhill 쇼핑컨설팅사 인바이로셀 CEO
그들이 생각한 명품의 가치는 물건의 가치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만족도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그것은 명품이어도 명품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만들 때부터 짧은 수명으로 프로그램되어 나오는 물건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 계속 쓸 것인지, 아니면 버릴 것인지 선택하는 게 우리의 몫이 아니란 얘기다. 아니, 그전에 어떤 물건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몫이 될 수 없다. 소비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서 제일 처음 빼앗아버린 것은 바로 이 선택권이었다.
하지만 국가가 가난하기는커녕 부를 이루고 있으며 나는 가지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이 가졌을 경우에는 가난이 오로지 나 자신만의 책임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내가 무능력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그래서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만 따져봤을 때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가정과 가정의 미래를 책임질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면, 그것은 곧 그 사람의 무능력함으로 귀결돼버린다. 따라서 오늘날의 가난은 단지 '돈이 없음'을 넘어서 무력감, 소외감, 우울감, 비참함 등의 감정을 동반하는 재앙이 되는 것이다.
화폐는 이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을 넘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비물질이 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은 물질에 준하는 교환수단의 가치뿐 아니라 사실상 '관계와 약속'으로 승급됐기 때문이다. 돈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이며 돈에 쓰여 있는 액수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람들은 직접 만나 화폐를 주고받는 것으로 거래할 필요가 없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만 있으면 그 자리에 언제든 거래가 가능하며, 시장 보로 갈 때나 택시를 탈 때도 돈 한 푼 없어도 신용카드만 있으면 된다. 이제 돈의 가장 중요한 형태는 지폐나 동전이 아니다. 통장이나 카드 영수증에 찍힌 숫자다.
부자들은 국가의 힘을 이용해 부를 지킨다.
"피할 수 없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들은 돈을 많이 법니다. 하지만 중간 계층에 많은 소득이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일이 가능해질까요? 비용이 적게 드는 사업이나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시스템이 요구되죠.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들이 국가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부를 유지하고 경쟁자를 저지하는 행태를 막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있다면 시장 체제의 자연적인 운용을 통해 중간소득 계층의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적은 수의 부자들과 극빈자들의 분배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상적으로 이런 형태를 가져야 합니다."
- 스티브 데이비드 Seve David 영국 경제연구소 교육담당 이사
돈과의 관계 맺음은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뜻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자신의 삶과 돈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 루소 프랑스 철학자-
"기특해서 저축한 돈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물었더니 영경이가 눈만 끔벅거리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되묻더라고. '어디에 써야 하는 건데?' 순간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아? 그래서 '어디에 써야 한다니?'라고 물었어. 그러니까 영경이가 또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저금통에 넣으라고 준 거 아니었어?' 진짜 할 말이 없더라니까. 초등학생이 됐다고 용돈을 줬더니 그 돈을 막상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는 거야. 저축정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냥 돈 쓰는 법을 몰랐던 거지."
이제까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알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부모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도 물건으로 서로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들조차도 브랜드와 브랜드가 아닌 물건, 비싼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을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그 물건으로 서로의 위치를 결정짓기까지 했다. 금융 관념을 배우는 대신 물건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법부터 배운 것이다. 그런 건 학교나 부모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통해 말을 배우듯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사람보다 물건의 가치가 더 높이 평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건 어른만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닐 것이다.
금융교육은 단지 돈의 개념과 쓰임뿐 아니라 소비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이뤄져야 한다. 소비를 통해 일시적으로는 만족할 수 있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