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p.19
늘 인간에 대한 공포에 떨고 전율하고 또 인간으로서의 제 언동에 전혀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고뇌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상자에 담아두고 그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또 숨긴 채 그저 천진난만한 낙천가인 척 가장하면서, 저는 익살스럽고 약간은 별난 아이로 점차 완성되어 갔습니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 그런 생각만이 강해져서 저는 익살로 가족을 웃겼고, 또 가족보다 더 불가사의하고 무시무시한 머슴이랑 하녀들한테까지도 필사적으로 익살 서비스를 했던 것입니다.
p.23
그렇지만 아아, 학교!
저는 학교에서 존경을 받을 뻔했습니다.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인간을 속여서 '존경받는다'해도 누군가 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도 그 사람한테도 듣고 차차 속은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그때 인간들의 노여움이며 복수는 정말이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상상만 해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이었습니다.
p.26
역시 제가 어렸을 적의 일입니다만 아버지가 소속하고 계셨던 어떤 정당의 고명한 분이 우리 마을에 연설하러 왔기에 저는 머슴들과 함께 극장에 갔습니다. 만원이었습니다. 특히 이 도시에서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의 얼군은 전부 보였고 모두들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 계셨습니다. 연설이 끝난 후 청중들이 삼삼오오 뭉쳐서 한밤의 눈길을 돌아오는데, 그날 밤의 연설을 마구 깎아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아버지하고 아주 친하신 분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개회사도 형편없었고 예의 고명한 사람의 연설이라는 것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고, 소위 아버지의 '동지들'이 화난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우리 집에 들러서 객실에 들어와서는 아버지한테 오늘 밤의 연설회는 대성공이었다고 진심으로 기뻐하는 얼굴로 말했습니다. 오늘 밤 연설회 어땠어? 하고 어머니가 물으시자, 머슴들까지도 아주 재미있었어요, 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연설회만큼 재미없는 건 없어, 라고 돌아오는 내내 투덜거렸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말이지 하찮은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제가 인간을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필사적인 서비스 같은 것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인간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즉 제가 머슴과 하녀들의 그 가증스러운 범죄조차 아무한테도 호소하지 않았던 것은 인간에 대한 불신 때문도 아니고, 또 물론 기독교적 박애주의 때문도 아니고, 인간이 저 요조에게 신용이라는 껍질을 단단히 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조차도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면을 가끔 보이셨으니까요.
p.47
호리키하고 교제하면서 또 좋았던 점은 호리키가 상대방의 생각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그의 소위 정열이 분출하는 대로(혹은 정열이란 상대방의 입장을 무시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온종일 시시한 얘기를 계속 지껄여대서, 둘이서 걷다가 지쳐도 어색한 침묵에 빠지게 될 염려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과 접할 때면 끔찍한 침묵이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을 경계하느라 원래는 입이 무거운 제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익살을 떨었던 것입니다만, 지금은 호리키 이 바보가 무의식적으로 그 익살꾼 역할을 자진해서 대신해 주었기 때문에 저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저 흘려들으면서 가끔 설마, 라는 둥 맞장구치면서 웃기만 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p.51
비합법. 저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즐겼던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두려웠고(그것에서는 한없는 강인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구조가 불가해해서, 도저히 창문도 없고 뼛속까지 냉기가 스며드는 그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바깥이 비합법의 바다라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헤엄치다 죽음에 이르는 편이 저한테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것 같습니다.
'음지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자, 또는 악덕한 자를 지칭하는 말 같습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에서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 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p.78
이때도 넙치가 저한테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말해 주었더라면 끝날 일이었던 것을 나중에 알고서 넙치의 불필요한 경계심, 아니 이 세상 사람들의 불가사의한 허영과 체면 차리기에 말할 수 없이 암울해졌습니다.
넙치는 그때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됐던 것입니다.
"공립이건 사립이건 어쨌든 4월부터 아무 학교에라도 들어가세요. 당신 생활비는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고향에서 좀 더 넉넉하게 보내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훨씬 뒤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사실은 그랬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저도 그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넙치가 괜히 신중한 척 둘러말했기 때문에 묘하게 일이 틀어져서 제가 살아나갈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던 것입니다.
p.90
그럴 때 저에게 미약한 구원은 시게코였습니다. 시게코는 그때쯤에는 저를 아무 거리낌 없이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아빠, 기도하면 하느님이 뭐든지 들어주신다는 게 정말이야?"
저야말로 기도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아, 저에게 냉철한 의지를 주소서.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해주소서. 사람이 사람을 밀쳐내도 죄가 되지 않는 건가요. 저에게 화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응, 그래. 시게코한테는 뭐든지 주시겠지만 아빠는 안될지도 몰라."
저는 하느님조차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벌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신앙,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채찍을 받기 위해 고개를 떨구고 심판대로 향하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지옥은 믿을 수 있었지만 천국의 존재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안 돼?"
"부모님 말씀을 안 들었거든."
"그래? 아빠는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모두들 말하던데."
그건 속고 있기 때문이야. 이 아파트 사람들 전부가 나한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얼마나 모두를 무서워하는지. 무서워하면 할수록 남들은 나를 좋아해 주고, 남들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아해 줄수록 나는 두려워지고 모두한테서 멀어져야만 하는, 이 불행한 제 기벽을 시게코한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시게코는 하느님한테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제를 바꿨습니다.
"시게코는 말이야, 진짜 아빠가 갖고 싶어."
화들짝 놀라고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습니다. 적(敵). 내가 시게코의 적인지, 시게코가 나의 적인지. 어쨌든 여기에도 나를 위협하는 끔찍한 인간이 있었구나.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투성이 타인. 시게코의 얼굴이 갑자기 그렇게 보였습니다.
'시게코만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 아이도 '갑자기 쇠등에를 쳐 죽이는 소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그 뒤로는 시게코한테조차도 쭈뼛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p.92
호리키는 뭐니 뭐니 해도 (시즈코가 부탁해서 마지못해 맡은 게 틀림없습니다만) 제 가출에 대한 뒤처리를 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자기가 제 갱생의 대은인 아니면 중매장이나 되는 것처럼 굴었고, 거들먹거리면서 저한테 설교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한밤중에 취해 가지고 와서는 자고 가기도 하고 또 오 엔(언제나 오 엔이었습니다.)을 빌려 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게 도대체 뭘까요. 인간의 복수일까요.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무조건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여태껏 살아왔습니다만, 호리키가 그렇게 말하자 불현듯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겠지.'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그냥 두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자네겠지.'
'이제 곧 세상에서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라 자네가 나를 매장하는 거겠지.'
'너는 너 자신의 끔찍함, 기괴함, 악랄함, 능청맞음, 요괴성을 알아라!'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로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이 개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예전보다는 다소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저는 조금 멋대로 굴게 되었고 쭈뼛쭈뼛 겁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호리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상하게 인색해졌습니다. 또 시게코 말을 빌리자면 시게코를 별로 귀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p.130
저는 요양소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 의사가 묘하게 온화하고 정중하게 저를 진찰하더니 "글쎄요, 당분간 여기서 정양하시지요."라고 수줍은 듯 미소 지으면서 말했고, 넙치와 호리키와 요시코는 저만 남겨 두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요시코는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저한테 건네주고는, 잠자코 허리띠 사이에서 주사기와 쓰다 남은 예의 약품을 내밀었습니다. 여전히 강장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 이젠 필요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무언가를 주었을 때 그것을 거절한 것은 제 생애에서 그때 단 한 번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불행은 거절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데 거절하면 상대방 마음에도 제 마음에도 영원히 치유할 길 없는 생생한 금이 갈 것 같은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저는 그렇게 반미치광이처럼 원하던 모르핀을 자연스럽게 거절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 같은' 요시코의 무지에 감동한 것일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자가 아니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p.163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39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다섯 번째 시도에 생을 마감하였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처절한 자기 파멸로 치닫게 하였을까?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다자이를 해독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근대 문학을 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자연주의 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에 뒷받침된 진지한 자기 모색의 문학이었다는 점에서 이 범주의 사소설들이 지니는 편협성, 평탄함, 범속성 등의 약점은 상쇄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와 더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명제 또한 이 세상에서의 생을 부여받은 모든 인간의 물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사도란 죽는 일임을 깨달았다. 매일 아침 매일 저녁, 다시 죽고 다시 죽어 늘 죽은 몸이 되어 있으면, 무도에서 자유를 얻어 평생 실수 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리라." (「하가쿠레」, 야마모토 쓰네토모의 언행록)에서 보이듯, 일본 무사도의 근간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있었다.
기독교가 지배 논리가 되기 전의 서구 사회뿐 아니라 인류사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숭고한 자살에 대한 용인 내지는 존경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왔다. 세네카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한 카토(Marcus P. Cato, 기원전 95~46)의 '의지적 죽음', 즉 자살은 "자기 목숨으로 자유의 가치를 조명해 낸" 정의로운 죽음으로 평가되었다. 자살이 기독교에 의해 비난의 대상으로 규정되기 200년 전의 얘기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책임하에 완결 짓는 행위는 어느 면에서는 성숙한 인간의 자주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자살은 용인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죽음의 미학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자살이나 자살 방조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법정죄로 성립된 배경에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모순이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곳으로 일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근대 문학사를 대략 더듬어 보아도 (중략) 자살한 문인들이 많이 있다. 미시마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이들의 자살에 대한 비난은 거의 보이지 않을뿐더러 일본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자기 논리에 따라 살다 간 존재로 간주하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아리시마 다케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근대 문인 중에서도 기독교를 가장 가까이 했던 작가에 속한다. 기독교와 자살이라는, 원천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에게 '그렇다면 기독교란 무엇이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p.179
그러나 패전 후의 일본은 그에게 환멸과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인간 실격자라 자조하며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 획득된 깊이 있는 인생 통찰이 패전 후의 사회상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했고, 그 분노는 그대로 좌절과 자포자기로 그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다자이의 자포자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그 개인의 몫이 아니라 전후의 혼탁한 상황에 실망했던 일본의 뜻있는 자들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81
1960년대 미ㆍ일 안보조약 자동연장 반대 시위로 시작되어 근 십 년 간 일본 전역을 휩쓴 정치의 계절에 다자이 문학은 학생들의 성전으로 떠받들어졌다. "패전 후의 혼미기를 우리는 다자이 오사무 하나에 의지하여 살았다. 다자이라는 존재에 모든 것을 건 것이다…… 우리는 현대, 지금의 현실을 대하는 입장에서 그를 비판하고 정당하게 부활시켜야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를 위해 부(負)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이기조차 하니까."(「다자이 오사무 론」)라는 공통된 익식하에 '무뢰파 문학', '퇴폐주의 문학'으로 불리며 다자이 문학은 패전 후 일세를 풍미했다 요시모토 타카아키에 의해 "일본 근대에 처음으로 '영혼'의 부의 행방을 확정지어 가시화시킨…… 예전에 그 아무도 이르지 못했던 부의 순교자'(「다자이 오사무」, 1976)로 정리되고 있다.
p.182
사회가 격변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 온갖 허위와 위선을 타파하고자 '혁명'을 지향하다 기존의 두꺼운 벽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자가 목숨을 걸고 자기 파멸로 치닫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것이다. 패전 후 어제까지 챔략 전쟁을 성전으로 옹호하고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고 떠들어대던 지도층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민주주의를 논하고, 공산당 인사들까지도 점령군 통치하의 '주어진 자유'에 도취할 때, 다자이는 맨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한없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모든 가치관, 윤리관이 전도된 패전후 문학의 첫 페이지에 다자이, 사카구치 같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작가가 놓인 것은 그나마 일본 근대 문학사에 있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전쟁에 졌기 때문에 추락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고, 살아 있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이다…… 인간은 추락할 수 있는 데까지 추락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도 인간과 함께 떨어져야 한다. 떨어질 데까지 떨어져서 자기 자신을 찾아내고 구원해야 한다. 정치에 의한 구원 따위는 피상적인, 웃기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사카구치 안고, 「타락론」, 1946)라는 인식하에 끝까지 추락해 가던 이들 무뢰파 문인들이, 배신감에 사로잡혀 있던 패전 후의 일본인들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면 최근의 재평가 움직임은 무엇 때문일까?
현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절망이 요구되는 격변기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가치관의 혼란, 세대간의 갈등 증폭,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 구조 심화 등으로 어떤 해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한다. 이런 때일수록 인간이기 때문에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나약함, 불신감, 절망감에 목숨을 걸고 천착하고자 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가적 자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자이의 절망이 그대로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해도 처절한 자기반성과 책임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다자이에 대한 재평가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공통적인 시대 인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p.185
다자이 연구가는 세상을 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남성 세계와 비합법적 세계에 속하는 여성 세계로 나누어, 사회의 실세를 형성하고 있는 남성 지배 세계에서 소외된 주인공 요조가 결국은 어느 세계에도 귀속하지 못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중략) 타산과 체면으로 영위되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세상과 확고하게 틀 잡힌 듯한 사회 질서의 허위성, 잔혹성을 「인간 실격」만큼 명확하게 드러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이 작품은 그런 뜻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예리한 고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넙치와 호리키가 드러내는 상식적인 인간상의 (적어도 그들은 이 사회에서 당당히 존재 가능하다.) 추악함은, 그 틀에 젖어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성을 촉구한다.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사회가 멸망해 가는 도정에 있음을 이 작품만큼 명백하게 제시해 보인 작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성 없는 사회는 결국 소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조의 고뇌를 인정할지하지 않을지가 다자이를 받아들일지 부정할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