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무기 Apr 08. 2022

지하철이 현실을 벡터화한다.

 네이버 지도를 켜보자. 원하는 도착지를 가는 방식에는 네 가지가 제시된다. 걸어서 가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자전거를 타는 것, 자가용을 타는 것. 더 이상 이족보행으로 우리를 한정 짓기에는 이동을 위한 신체는 기계의 힘을 빌려 너무 많이 확장이 된 것 같다. 비단 다리뿐만이 아니라, 수평적 시각이, 수직적인 지도의, 위성의 시각으로 확장되며, 최적의 시간을 제시해준다. 이제 신체는 더 이상 사적으로 통제 가능한 객체적인 대상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진다. 확장하는 우리의 신체는 비대해진 몸을 가누지 못해, 포개지고, 겹쳐지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신체로 변화한다. 더 많은 공간, 더 먼 거리, 더 다양한 사람을 향유하고, 부딪히며, 체계, 문화, 등의 국가화된 삶에 끼어버린다.


 이렇게 확장된 신체 중 지하철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규격화하고 있을까. 지리적 확장, 더 먼 거리의 지역을 점유하게 만드는 이 사물을 소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지불하고 있을까.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합리성이 규정하는 소비는 우리에게 행복을 강요한다. 시장에서 재화를 획득하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은 윤리적인 소비자의 모델로 제시한다. 이것은 ‘상징과 기호’, 표상을 소비하는 현시대의 소비사회에서 ‘자신의 욕구’의 사적인 측면을 절단하는 집행자의 면모를 보인다. ‘맛집’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맛’에 중점을 둘 수 없다. 아무나 먹지 못하는 맛있는, 기다림이 필요하거나, 더 많은 재화가 필요한, 등의 다양한 상징으로 만들어진 ‘맛집’이라는 시뮬라크르가 존재한다. 이것이 복제되고 점철되는 과정은 인터넷, 소셜 미디어 상에서 이루어지며, 일련의 과정에서 공적인 인정을 받으면 ‘맛집’으로 자리하고, 사적인 욕망으로 자리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접한 대중들은 지하철을 타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거대도시(metropolis)로 발전해 가는 서울은 더 이상 하나의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 기차, 자동차, 지하철 같은 원거리 교통수단이 연결해주는 네트워크(network)처럼 경험된다. 여기서 지하철은 표면에 드러나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닌, 지하라는 공간을 창조해서 점유한다. 공간과 공간만을 연결해서 구성하는 이러한 네트워크는 효율적인 생산물이다. 이동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목적지를 향하는 부차적인 요소를 최대한으로 제거한다. 교통체증, 날씨, 노동의 피로감을 최소화한다. 오로지 목적만이 존재한다. 이동에서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여정’은 점차 얇아지고, 노선도, 위성지도, 등의 이차원 표면에 가까워진다. 더 이상 서울에서 여행은 불가능하다. 불완전성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배제된다.


 불완전성은 왜 거대도시에서 배제되는 것일까. 불완전성은 결국 시간을 소비하게 하는 요소이다. 프로세스를 교정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은 비효율적이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자본주의의 가르침 속에서, 불완전성은 악의 무리이다. 결국에 우리는 네이버 지도 등의 플랫폼이 제공하는 완벽한 프로세스를 통해 이동한다. 모든 불완전함을 제거하는 동시에,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은 불가능해진다. 우리의 확장된 수직적인 시각은, 그 언제보다 많은 것을 보게 하지만, 제공된 네트워크 사이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트랙 위의 경주마의 시각이기도 하다.


 이렇게 얇아진 여정은 지하철의 풍경처럼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다. 출발지와 목적지, 두 가지가 중요할 뿐이다. 현실에서의 광자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그라데이션은 사라지고, 역과 역으로 이루어진 지하철 노선도처럼 평면화 된다. 수평적 시각에서 보이는 소실점은 사라지고, 수직적 시각의 평면 만이 존재한다. 레스터 이미지조차 a에서 b로 이동하는 경계에는 다양한 픽셀들이 그 자리를 채우지만, 이러한 지하철을 통해 얇아진 여정은 그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목적과 목적이 만나는 이러한 모습은 마치 현실이 벡터화되는 것 같다. 이미지 트레이싱된 공간은 더 이상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고 면과 면이 만나는 평면적인 벡터 이미지처럼 보인다.


 맛집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개인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이 여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은 나만의 홈(Home)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불완전함에서 만들어지는 독창적인 내러티브는 남들과 다른 공간의 의미를 만들며, 그 공간을 개인화한다. 나의 작은 작업실 겸 자취방에서만 있기에는 나는 조금 답답하다. 그렇기에 나는 네트워크를 빠져나와 나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