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허리로 하시는 10번의 인사

환자와 의사, 서로 조금씩 기대어서 살아가는 거 아닐까.

by 이지선

진료실 문이 열리자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어느새 76살,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제일 오래 뵌 분 중 한분이다.

할머니는 허리가 많이 굽으셨다. 내 얼굴 제대로 보려면 등을 한참 펴셔야 하는.
"선생님, 잘 지냈어요…"
지난번에 약을 확 줄였는데도 멀쩡하다고 하신다.
평생 먹으리라 생각했던 약인데, 조금이라도 줄인다는 건 솔직히 환자분한테 진짜 큰 희망일 거다.

내가 반가워서 바로 한번더 해보자고,
"이번에도 조금 더 줄여볼까요?"
"알아서 해주세요^^"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 표정 하나 보면 진짜 하루 일과가 뿌듯해진다.

진료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실 때
"선생님 고맙습니다."
굽은 등으로 고개숙여 인사하신다.
연달아 인사하시기에 도대체 앉을 겨를이 없이 10번은 서로 인사한듯.^^


사실 더 고마운 건 의사가 아닐까
약을 줄여도 잘 견뎌주시고,
꾸준히 치료받아 주시고,
"선생님, 좋아졌어요." 이런 소리까지 먼저 해주시다니.
항상 병원까지 꼬박꼬박 오셔서,
굽은 허리로 인사까지 해주시는 할머니를 보면
나는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생각한다.
'고마운데, 누가 더 고마운 건지?'
할머니는 치료해줘서 고맙다 하시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인사 한마디에 위로받는다.
환자와 의사, 서로 조금씩 기대어서 살아가는 거 아닐까.

할머니의 "좋아졌네요" 한마디면,
나도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진료실 정리하면서,
'아, 오늘 진짜 괜찮았다, 잘한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할머니 덕분에
나도 한 뼘 더 좋은 의사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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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진료실에서 내가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사실은 환자가 나를 더 단단하게 세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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