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데리고 있다.

by 이지선

꼭 한 번은 일을 키우고야 마는 내가 있다

돌아서기 직전, 굳이 한 발을 더 내딛는 사람


저지르고 나면 후회는 모양을 가진다

어디를 아파해야 할지 알겠다


아무 일도 없던 밤의 후회는 모서리가 없다

뒤척일 때마다 방향을 바꾸며 찌른다


삼켜버린 말들 위에 몸을 눕히고

지나간 선택들 위에 등을 뉘인다


그래도 언제나 눈을 떠야 했다

아침은 제 시간에 도착하고 해야 할 것들은

밀린 빚 받으러 온 사람들처럼 문 앞에 선다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둘 책임이 되어

어느 순간 그것들이 곧 내가 되어 있었다


속으로만 우는 나를 뒤돌아서야 알아본다


*

너는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말을 먼저 뱉고, 그제야 숨을 삼키는 사람


사람들은 말한다 마음 편한 사람이라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복기

쿵쾅대는 작은 심장은 하나도 괜찮지 않다


그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를 부러뜨리지 않으려는 습관이다


그날 밤,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너를 나는 아직도 데리고 있다


*

극적인 극복도 환한 결말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아침이 있다


밉고, 참기 힘들고 왜 그랬는지

묻고 싶은 밤들이 있어도


이 무게를 가진 채

다시 아침으로 걸어가는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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