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꼭 한 번은 일을 키우고야 마는 내가 있다.
돌아서기 직전에서, 기어이 한 발을 더 내딛는 사람.
나는 왜 매번 거기까지 내려가는지 아직도 모른다.
다만 나는 그렇게 타고난 듯도 싶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깊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돌아설 때 마주할 아쉬움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왜 끝까지 가지 않았나'라는 질문은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지만, 이미 저지른 후회는 차라리 단순했다.
선을 넘고 나면 순간은 유난히 선명해진다. 선택을 감행한 나와, 선택하지 못한 채 남겨진 내가 분명하게 갈라선다.
무언가를 저지르고 나면, 후회는 모양이 분명해진다.
사위를 좁히는 압력은 열기를 동반하기도, 때론 얼어붙게 만들기도 하지만, 꼭 같은 건 내가 잘못한 지점을 짚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껏 눌려버린 나는 어쩌면 잘 자버린다.
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후회는 모서리가 없어, 밤마다 방향을 바꿔 가며 나를 찔렀다.
누군가를 향해 칼을 들었던 선명한 기억은 30년이 지나 나를 통과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 깊은 잠을 잡으려 해본다.
되풀이되는 물속에 가라앉듯 의식이 서서히 꺼지는 꿈도 없는 잠.
이미 지나간 선택 위에 몸을 눕히는 느낌이었다.
어떤 후회는 선명해서 투명한 나를 할퀴듯 지나가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다.
숨기고, 견디고, 잠 속에 눕힐 수 있다.
그러나 관계 속 후회는 지나가버리는 종류의 것이 아니어서, 내가 감수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모른 척하고 깊이 눌러도 기어이 살아나온다.
그러면 불안이 온다. 조용히, 가장자리부터.
불안을 견디기 위해 멈추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이 남는다.
그 선택은 그때는 나를 지키는 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돌아온다.
내 기질에는 그게 더 아파 아무렇지 않은 듯 매진해버리고, 또 다른 구덩이를 만든다.
그래도 언제나 눈을 떠야 했다.
명목을 삼아 죽은 듯 누워 있어도 아침은 왔고, 해야 할 것은 꼭 나를 기다려서 밀린 빚이라도 받을 듯한 태도다. 이래저래 만든 하루는 또 관계가 되고, 기억이 되고,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둘 책임이 되어 있었다.
책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내가 되어버린 것들이었다.
외면하지 않은 것들은 더 큰 무게로 커져왔다.
도망을 갔었던 것 같은데, 또 그것도 내 성격에는 아니라 마주하고는 크게 아파한다.
머리를 수차례 쓰다듬어도 울음을 멈출 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면 참 좋겠는데, 언제나 뒤돌은 자리에서 안쓰럽다.
선을 넘는 순간, 그 선명한 장면 속에서 어떤 눈을 만난다.
말리지 못하던, 말려도 소용없을 걸 알던, 그래서 그저 지켜보던 눈.
*
너는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말을 뱉은 뒤에야 숨을 삼킨다. 열기가 지나가야 머리부터 차가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속 편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되는 네 머릿속과, 쿵쾅대는 작은 심장은 괜찮은 게 아니다.
하얗게 쥔 손톱 밑으로, 무게 아래에 무서움을 삼키고 있는 네가 선명하다.
네가 멈추는 순간은 늘 비슷하다.
어리고 여린 홍조가 온몸을 휘감아 행복하던 네게, 불안이 서늘함을 달고 찾아올 때.
배려라는 이름으로 가벼운 엉덩이를 눌러 앉힐 때.
그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날 밤, 칼을 들 수밖에 없었던 너를—나는 아직도 데리고 있다.
그래도 모든 걸 이기고, 결국 가고야 마는 순간이 있다.
안과 밖.
공감과 거리.
저지름과 멈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곳.
후회가 모양을 갖춘 곳과 모서리 없이 떠도는 곳 사이.
그 경계에서 중심을 잡는 일—그게 너를 지탱하기도, 갉아먹기도 한다.
속도를 늦추고,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추는 법을 배우면서도 방향은 바꾸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무거운 자리다.
여전히 겁이 나도 손을 움직인다.
부르지 않아도 될 이름을 부르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며, 해야만 하는 하루를 통과한다.
극적인 극복도, 환한 결말도 없다.
대신 반복되는 아침이 있고, 그 아침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있다.
*
그래서 나는 놓지 못한다.
밉고, 참기 힘들고, 왜 그랬는지 묻고 싶은 밤이 있어도.
이 무게를 가진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