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느껴지는 때

나를 다시 바라보다

by 이지선

# 실패라 느꼈던 어느 날, 나를 다시 바라보다

나는 한때 하버드에 연수를 가고 싶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곳에서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었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최신 논문을 발표하며, 누군가에게는 존경받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은 막연하지 않았다. 임상교수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언젠가는 반드시 해외에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두 아이가 내게 온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것이 아니라 바꿔야 했다. 밤새도록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점점 연구실에서 멀어져 갔다. 학회 참석도 부담스러워졌고, 논문 작성은 미뤄지기 일상이었다. 결국 임상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봉직의로 새 출발을 해야 했다. 선택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마음 한편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친구들이 학회에서 발표하는 사진을 SNS에 올릴 때마다, 누군가 해외 연수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좋아요'를 눌렀다.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함을 삼켰다. 이것이 질투인지 아쉬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중학교 2학년과 3학년이 되어 있다. 이제는 도시락보다 성적표에, 준비물보다 진로에 신경을 쓴다. 둘째는 수학이 어렵다고 하고, 첫째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학원 숙제를 봐주고, 시험 범위를 확인하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함께 세운다. 가끔은 내가 포기했던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는 작은 의원의 원장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환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고, 진료에 대한 만족도도 나쁘지 않다. 마케팅에도 신경을 쓰고, 직원들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며 나름대로 운영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안정적이고 괜찮은 삶이다.


하지만 가끔, 진료실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생각에 잠긴다. '내가 정말 이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 하버드는 이제 정말 포기한 걸까, 아니면 그냥 없는 척하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더욱 모호해진다.


동기들 중에는 여전히 대학병원에서 연구하며 해외 학회를 누비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근황을 들을 때마다 나는 복잡한 기분이 든다.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물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감정들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아쉬움이 있다면 있는 대로, 미련이 남는다면 남는 대로 두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애매함이야말로 중년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는 가끔 말해준다. "엄마도 아직 다 자라지 못했어.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궁금한 게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 그들이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완벽한 어른의 척하며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진로 고민이 많은 첫째에게는 "엄마도 계획대로 안 됐지만, 그래도 지금 나름 괜찮게 살고 있다"라고 말해준다.


어제 병원에서 한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 요즘 의사들은 바쁘다고 대충 보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은 정말 꼼꼼히 봐주시네요."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뿌듯했지만, 동시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이것으로 충분한 걸까, 아니면 여전히 무언가 부족한 걸까.


하버드의 캠퍼스는 내 앞에 펼쳐지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작은 아쉬움까지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나를 여전히 살아있게 하는 무언가일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나는 진료실에 앉아 환자들을 만난다. 완전히 만족스럽지도, 완전히 불만스럽지도 않은 이 애매한 자리에서. 아마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하루치의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