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님의 자서전을 읽으며
교수님의 자서전이 도착했다. 물론 올해 초.
[내가 가보지 않은 길].
무게가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 교수님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평생의 모토로 삼아 살아오셨다는 인터뷰를 읽은 기억도 떠오른다.
책장을 펼치기 전, 나는 잠시 망설였다.
스승의 삶을 바라본다는 건, 때로 내가 아직 닿지 못한 높이와 마주하게 되는 일임을 알기에,
왠지 모를 불안과 경외가 마음 한켠에 스며들었다.
토요일 오후, 병원은 고요하다.
진료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책상 위에 사선을 그린다.
나는 여기 있다.
물품을 정리하고, 차트를 정돈하고, 다음 주를 준비한다.
일요일이면 글을 쓴다.
멈추면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는 것 같아서,
하루 한순간도 허투루 쓸 수 없어서.
책장을 넘긴다.
교수님의 선택들이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그리고 선택하지 않은 길들, 조용한 그림자처럼 그 곁에 남는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가능성을 손에 쥐고 하나씩 놓아버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갈림길마다 무수한 문이 닫히는 경험이 결국 우리 모두를 빚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게 되는 시간이다.
요즘 나는 거의 매일 밤, 준비하지 못한 시험, 쉽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쏟아지는 꿈을 꾼다.
스무 해 가까이 이 일을 해왔는데도, 여전히 부족하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문득 오늘 만난 한 환자가 떠오른다.
스무 해 동안 통풍을 방치한 끝에 손가락은 굽어버리고, 신장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 말이 유독 오래 머문다.
나는 늦게라도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몸의 병뿐 아니라, 그 오랜 방치의 시간까지 함께 짚어나가야 했으니까.
의학적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마음까지 닿게 설명하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이나 환자에게도, 나에게도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교수님은 언제나 환자의 입장만큼 자신의 마음을 열어주며 회진을 돌았다.
환자가 열어둔 만큼 병실의 커튼을 걷고, 남겨둔 만큼 불을 켰다.
혹은 주말이면 누군가의 결혼식, 인생의 결정적 순간 곁에 직접 찾아가 계셨다.
그 배려와 진심은 결국 “의사는 병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사람”임을 말 없이 보여주셨다.
교수님의 높고 먼 길이 나는 때로 부담스럽다.
그래도 그런 길이 있었기에 우리는 쉽게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낮고 쉬운 곳에 머물려는 나를 붙드는 힘이,
스스로 새기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스며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가보지 않은 길—
그건 매 순간 최선을 택해온 시간의 축적이 아닐까.
수없이 고민하고, 때론 후회하면서도 묵묵히 걸어온 시간들.
그 빛과 그림자가 오늘의 교수님을 만들었고,
그 그림자 아래서 나 역시 조금씩 길을 찾아간다.
해가 기운다.
병원을 나서며 한 번 더 뒤돌아본다.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이 자리에서 환자를 만나고, 설명하고, 어쩌면 함께 새로운 길을 찾겠다.
그것이,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의사의 길’임을 믿기에.
언젠가 나도, 내가 걸어온 길과 아직 걸어보지 못한 길들을 돌아보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무엇을 아쉬워하고, 무엇에 감사할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먼저 그 길을 보여주신 분이 있었기에 지금, 나 역시 이 길 위에 설 수 있었다는 것.
감사의 말은 언제나 부족하다.
갚을 수 없기에, 오늘의 환자에게, 내일의 동료에게, 아직 만나지 못한 후배에게
조금씩 나누고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밤이 온다.
책을 덮는다.
교수님의 가보지 않은 길들이 조용히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내가 아직 걸어가야 할 많은 길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