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하루치의 용기만을 꺼낸다
문이 열린다.
3초 안에 나는 환자의 빛과 그림자를 읽는다.
아침, 고요 속에서
진료복을 여미면 심해로 잠수하는 느낌이 든다.
진료실은 투명한 잠수함,
나는 오늘도 하루치의 용기만을 꺼낸다.
첫 번째 환자는 30대 여성,
불면증과 관절통 사이에서 지쳐 있다.
소리 없는 한숨에 마음을 다독이고
작은 변화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두 번째 환자는 70대 할머니,
자식 걱정을 숨긴 얼굴,
손등에는 약물 주사로 남은 흔적.
나는 부드럽게 손을 잡는다.
불편을 묻고, 주사 놓을 팔을 어루만진다.
세 번째 환자는 10대 소년,
진단 받았던 첫날,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약을 바꿔줄 때, 젊은 눈빛에
작은 의심과 희망이 조금씩 섞인다.
네 번째 환자,
"선생님, 이거 암 맞죠?"
검사지를 떨리는 손으로 내민다.
나는 잠시 말을 잃는다.
이런 순간, 용기는 바닥난다.
환자들은 저마다의 심연에 빠져 있다.
어떤 이는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고
어떤 이는 이미 바닥을 포기했다.
나는 매순간
"물속에서 건져 올리는 생명의 밧줄"
처방전과 격려, 그 두 줄기 희망을 건넨다.
진료실 창밖,
유리벽 너머에서도 파도는 쉬지 않는다.
환자의 통증, 나의 불안,
끝없는 업무가 물결처럼 밀려온다.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나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
이 무거운 신뢰들 앞에서
한 번도 완벽했던 적 없는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묻는다.
하지만 오늘 움켜쥔 하루치의 용기만으로
또 한 번,
한 명의 환자와 나,
우리는 각자의 심해를
조금씩,
함께
건너고 있다.
***
진료실의 하루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이 하루치 용기가
누군가의 아픔을 잦아들게 하고
내일을 향한 희망이 될 것이다.
문이 닫히면
나는 오늘의 실패를 센다.
놓친 신호, 부족했던 위로.
그리고 내일을 위해 칼날을 간다.
또 한 번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