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온 예민함

Sensitivity as Survival Weapon

by 이지선

숨겨온 예민함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예민한지를.

소리와 냄새, 사람들의 숨소리나 눈빛, 억양의 미묘한 변화까지 감지해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예민함 때문에 끊임없이 걱정하고, 쉽게 불안해한다는 것을.

나 역시 예민하고 불안한 성향이 있다. 이것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지만, 의료진으로서는 환자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의 한 부분일 뿐이다.

오랫동안 나는 이 예민함을 숨겨왔다. 의대 때부터 계속 들어온 말이 있었다. "의사는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 "환자가 죽어도 울면 안 된다", "환자들의 어떤 감정적 호소에도 냉정하고 전문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 기대들이 내게는 더 큰 압박이었다. 예민한 나는 그 모든 기대를 더 선명하게 감지했고, 더 무겁게 받아들였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강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진료실에서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의사가 되어야 했다. 증상을 분류하고, 진단을 내리고, 처방전을 써주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자.

하지만 퇴근 후에 나는 다시 그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가 만지작거리는 바스락 소리가 내 신경을 긁고, 틱틱거리는 소음이나 휴대폰 진동음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이상한 냄새가 나면 불쾌한 감정이 온몸을 휩쓸고, 때로는 누군가의 눈빛이 내 피부를 파고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오늘 놓친 것은 없을까, 환자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밀려온다.


역설적 발견

류마티스내과 의원을 운영하며 나는 매일 환자들의 예민함과 불안을 마주한다. 관절의 미묘한 변화를 호소하는 환자들, 날씨가 조금만 바뀌어도 몸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 "혹시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찾아오는 환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그들의 미묘한 신호를 읽어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나의 예민함 때문이라는 것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의 미묘한 변화를 조금씩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관절의 미묘한 부종을 손끝으로 감지하는 법도 시간이 지나며 배워왔다. 환자들의 걸음걸이 변화에서 오늘의 컨디션을 읽어내는 것도 그렇다.

습도와 기압의 변화가 내 몸에 먼저 와닿아 환자들이 올 날을 예측할 수 있고, 대기실의 공기만으로도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픔을 안고 왔는지 안다. "아픈 곳이 없다"는 말 뒤에 숨은 진짜 고통을 눈빛에서 찾아낸다. 그리고 불안은 "혹시 놓친 것은 없을까"라며 나를 더 꼼꼼하게 만든다.

이것이 내가 가진 의사로서의 덕목이었다.


기대라는 무게

그런데 나는 사람들의 기대에도 과도하게 예민하다. 환자의 눈빛에서 읽어내는 "이 의사가 나를 완치시켜줄 것"이라는 간절함, 직원들이 보내는 "원장님이 모든 걸 해결해주실 거야"라는 신뢰, 가족들의 무언의 기대까지도.

오늘도 한 환자가 리뷰를 남겼다. "정확한 진단과 꼼꼼한 진료로 몸도 마음도 치료받는 느낌"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워지는 마음. 내 예민한 감각이 그 한 줄 한 줄에서 환자의 절대적 신뢰를 읽어낸다. 그리고 그 신뢰가 나에게는 또 다른 무게가 된다.

이 모든 기대들이 내 어깨 위에 쌓인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저버릴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예민한 감각이 그 기대들을 너무나 선명하게 포착해버리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밤이 되면 예민함과 불안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불 속에서도 내 감각은 잠들지 않고, 불안은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하루 종일 받아들인 신호들이 꿈 속에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온다. 나는 밤마다 10개의 꿈을 꾼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밤새도록 세상을 감시하고 걱정했다는 듯 지쳐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예민함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생존 본능이라는 것을. 수만 년 전 내 조상들이 사자의 발소리를 들었듯, 나는 진료실 복도 끝 발걸음에서 누군가의 기분을 읽는다. 썩은 고기의 냄새로 죽음을 피했듯, 나는 대기실의 미묘한 변화에서 환자의 위험을 감지한다. 동료의 눈빛 한 번으로 무리에서의 배척을 알았듯, 나는 환자의 침묵에서 숨겨진 고통을 본다.


끝없는 질문들

그리고 이 예민함과 불안은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환자가 불편해하는 대기실의 조명을 감지하면 즉시 개선책을 찾고, 진료 흐름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포착하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불안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환자가 더 편안할 방법은 없을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직원들의 미묘한 스트레스 신호를 읽어내어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환자들이 말하지 않는 불편함을 감지해서 진료 프로세스를 개선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자주 바꾸냐고, 왜 가만히 있지 못하냐고.

하지만 나는 그냥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환자 한 분이라도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작은 변화들이다.


견딜 수 없는 무게와 선택

동래에서 해운대로 이전을 결심한 건 너무 힘들어서였다. 10년을 버텨왔지만, 그 예민함과 불안이 때로는 나를 짓눌렀다. 매일매일 쌓이는 감각들의 무게와 끝없는 걱정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을 때, 나는 도망치듯 새로운 곳을 찾았다.

하지만 이전 과정은 더 큰 시련이었다. 낯선 공간의 모든 소리와 냄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압박감, 기존 환자들에 대한 걱정, 직원들의 불안, 그리고 "과연 잘한 결정일까"라는 끝없는 자기 의심.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내 예민함과 불안은 나를 지켜주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둬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20년의 깨달음

지난 20년을 돌아보니, 내 경험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 예민함과 불안은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온 것 같다. 사람들이 결함이라 부르던 그 감각들이 사실은 나만의 나침반이었던 것이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미묘한 변화를 조금씩 더 잘 읽어내게 되었고, 동료들이 지나치는 신호들을 포착하는 법을 배워왔다. 관절의 미묘한 부종을 손끝으로 감지하고, 환자들의 걸음걸이 변화에서 오늘의 컨디션을 읽어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늘어난 능력이다. "아픈 곳이 없다"는 말 뒤에 숨은 진짜 고통을 눈빛에서 찾아내는 것도 그렇다.

여전히 부족하고, 되돌아보면 실수였던 것들이 많다. 환자에게 섣불리 말했다가 후회한 적도 있고, 예민함 때문에 동료들과 어색해진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나를 견뎌준 사람들이 있었다. "괜찮다"고 말해주지도 않고, "잘했다"고 위로해주지도 않았지만, 그냥 묵묵히 옆에 있어주었다.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긴장해서 떨고 있을 때도, 설명이 서투를 때도, 그냥 기다려주었다.

20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예민함과 불안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다.


나만의 언어

나는 오늘도 감각을 세우고 불안해한다. 살기 위해,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이것이 수만 년을 이어온 생존의 본능이고, 나만의 언어다.

세상이 결함이라 부르는 것들을 나는 이제 다른 시각으로 본다.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불편하지만 선명한 이 감각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13년의 시간이 그것을 증명했고, 앞으로의 시간이 더 증명해줄 것이다.

예민함과 불안은 더 이상 나의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읽어내는 나만의 방식이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는 도구다.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 나만의 강점이다.


--------------------------------------------------------------------------------------------------------------------------

작가의 말

의사로서 매일 환자들의 예민함과 불안을 마주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도 그 예민함과 불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썼다. 오랫동안 숨겨야 할 결함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나를 더 나은 의사로, 더 세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강점이었다는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다.

이 글이 자신의 예민함과 불안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것을 결함이 아닌 고유한 능력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이전 05화전문성에 대한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