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2.9

반투막

by 이지선

진료실 문손잡이엔 미지근한 오후가 묻어 있다.
커피 향이 얇게 떠 있고, 창은 빛을 슬며시 거른다
유리도 막이니, 선택이 예의.


문이 열리면
오늘의 대사가 들어오고
어제의 마음이 따라 들어온다.

내 손끝이 맥박에 닿는 순간,
누군가에겐 명의
누군가에겐 낮은 벽
누군가에겐 다정함
누군가에겐 단호함이 된다.


해석이 겹쳐지는 곳,
나는 그 겹과 겹 사이의 틈에 선다.


투명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내 피로

유년의 잔광
아이들의 웃음
오늘의 무게가
반투명한 그림자로 스며든다.


그들도 투영한다—
희망과 두려움
이미 걸었던 우회로
입 밖에 못 낸 질문들.


거울을 닦아도 얼룩이 남고,
윤곽은 늘 흐린 쪽에 기운다.


내 마음의 지문과 당신 마음의 상처가
여기, 투명한 여백에서 조용히 체온을 섞는다.


우리는 다섯 가지 언어로 겨우 닿는다.
●말의 온기
■몸의 신호
▲숫자의 그림자
◆세포의 속삭임
★그리고 직감의 미세한 떨림
완전한 일치는 오지 않겠지만
적당할 관계


완전한 벽을 세우라 했으나
견고함은 결국 숨쉴 틈을 잃는다.
그래서, 반투막.
필요한 것만 통과시키고, 넘치는 것은 머물게 한다.
왜곡을 감수하되 진실의 골격을 지키는 기술.


오늘도 나는 이름을 부른다.
너의 이름, 나의 이름.
37.2와 38.2 사이
과열은 식히고, 온기는 남기는
이 삶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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