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토요일 오후 네 시.
남서향 집,
먼지를 품은 오후 햇살이 거실을 지나 주방까지 깊숙이 내려앉는다.
원목 간살이 그 빛을 곱게 나누어 품은 덕에,
공간은 흡사 명상처럼 노곤한 아늑함에 잠긴다.
논문 데이터와 한참이나 씨름하던 컴퓨터는
이처럼 잠시 멈추고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 잠정적인 멈춤이야말로
주간의 노동을 끝낸 내게 허락된
고요한 행복이라 인식한다.
다시 데이터는 한 길이지만,
이순간,
무용(無用) 속에서 나도 차분히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