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란.
예전의 나는 서점에 가는 목적이 분명하였다.
서점에 가면 괜히 나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듯하였고,
모든 것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이제는 어느덧 10년 전이 되어버린 중학교 시절의 나는
한때, 첫사랑이자 짝사랑을 쫒으며 감성, 사랑 따위의 것들의
에세이를 서점에서 찾곤 했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책이 메꿔주었고,
물론 상처를 준 사람은 의도가 없었다.
오랜만에 서점을 갔다.
역시 나의 발길은 처음에는 무조건 에세이 코너로 먼저 가더라.
감성글, 수필, 에세이 이런 것들이
다 개인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공감이 됐던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 감성적이다는 말은 너무나 포괄적이다.
그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조금만 줄여보자면,
여전히 어릴 때의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다시 얘기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신념들이 살아가다 보면, 아니.
자연스레 나이를 먹다 보면 바뀌거나 깨져버리거나.
어쩌면 사라져 버린다.
"그러기 마련이다."
의구심을 가진 채로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 신념이 잘못됐었나."
사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잘못된 생각, 신념, 감정들은 없다.
다 건강한 사고이자 사유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그리고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이젠 서점에 가면, 감성 에세이보다는
토익, 자기계발 책들에 더 관심이 가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물론, 그게 전혀 잘못된 건 없는데. 정말 없는데.
괜히 그랬다. 정말 괜히 좀 그랬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 깨질 때의 느끼는 감정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딱히 어떤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가 결과만을 바라볼 때, 나는 그 노력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가 결론만을 바라볼 때, 나는 그 과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고.
누군가가 성과를 말할 때에, 나는 시행착오의 땀과 피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이제는 내가 왜 그런 사람인지, 왜 그런 신념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궁금해졌다.
바른 사람이라서? 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아쉽게도 둘 다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힘든 시기일 때마다 당신이 있었다.
그 힘든 시기는 거창한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친 내 몸을 이끌고 걸어가는 헬스장 따위의 것이다.
헬스장 거울 앞에 선 내 초라한 모습을 봤을 때,
당신의 얼굴이 보여서.
나의 얼굴에서.
나와 닮은 당신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서.
아니.
당신과 너무나도 닮은 내 얼굴이 뚜렷하게 보여서.
눈물이 나왔다.
나는 달라지고 있었지만, 당신은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고.
변하지 않은 채 항상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 알 수 있었고.
"저는 당신의 아들."
당신의 가르침.
그대로 이어받겠습니다.
저의 신념을 가지고.
가치관, 좌우명을 가지고.
더디지만 방향성을 가진 채로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